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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지역의 문화재를 엿보다 12 필경사
심훈 문학과 <상록수> 정신의 산실

문학작품에 담긴 심훈의 민족의식
아버지 살던 부곡리 내려와 집필 몰두
농촌 계몽소설 <상록수> 집필한 필경사
당진시대l승인2017.06.24 21:25l(11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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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본명 심대섭은 근대소설가이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다. 3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는 중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연극과 영화, 소설을 집필했다. 특히 영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먼동이 틀 때>는 식민지 현실을 다뤄 큰 인기를 얻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감독 활동은 이 작품이 마지막이었다. 이외에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소설을 연재했지만 일제의 검열에 의해 중단되기 일쑤였다. 독립투사와 달리 문학작품을 통해 민족의식을 표현한 심훈은 계급적 저항의식과 휴머니즘이 잘 나타나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붓으로 마음을 그리다

심훈은 1932년 아버지가 살고 있는 송악읍 부곡리로 내려와 집필 활동에 매진했다. 2년 뒤인 1934년 심훈이 직접 설계해 지은 집이 바로 필경사다. 필경사의 필경은 1930년 그가 발표한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붓으로 논과 밭을 일구듯 표현하고자 하는 심훈의 의지가 담겨있다. 필경사는 작은 목조건축물로, 조선시대 농촌 초가집의 전형을 보여준다. 필경사 내부에는 심훈이 읽던 책과 등불, 아궁이, 화장실 등이 그대로 재연돼 있다. 한편 심훈은 필경사에서 1935년 농촌 계몽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평가받는 <상록수>를 집필했고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심훈기념관 운영 보완해야”

심훈을 기리는 곳인 상록수 문학관이 있었지만 공간이 협소했고 시설 노후화가 심각해 심훈을 기념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돼 지난 2014년 심훈기념관을 25억 원을 들여 건립했다. 하지만 상설전시 이외에는 별다른 행사나 문학 관련 기획이 없다는 것이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심훈기념관은 당진시 직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심훈의 일대기를 다룬 책자와 유품 등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당진시 문화관광과 고대영 학예사는 “심훈의 <야구>, <오 조선의 남아여>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시를 위주로 적극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라며 “무엇보다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어 “심훈을 기리는 다양한 문학 행사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획기사는 2017년 충청남도 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 보도합니다.

미니인터뷰 고대영 학예사

“<상록수>는 의미있는 한국근대문학”

“필경사는 문학인이 지은 집이고 상록수라는 결과물이 탄생한 의미 있는 곳이죠. 또 심훈 선생이 당진의 현재 모습을 잘 드러내는 것 같아요.  타지에서 당진으로 이주한 사람들처럼 심훈 선생에게도 그 당시 당진은 낯선 곳이었겠죠. 심훈기념관에는 당시 심훈 선생의 활동 모습이 잘 남아있습니다. 시민분들의 관심이 더욱 많이 필요합니다. 당진시에서도 심훈 선생의 업적을 기릴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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