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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 입력 2017.06.29 20:38
  • 호수 1165

5대 정승 가문의 상징
당진지역의 문화재를 엿보다 13 삼월리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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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무 셋째 아들 이행이 심은 나무
살아있는 역사, 500년 전통 보존해야

회화나무는 중국에서 높은 관리의 무덤이나 선비의 집에 심던 나무다. 또한 벼슬을 하거나 승진할 때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회화나무를 들여와 향교나 사찰 주변에 심었다.

삼월리 회화나무는 지난 1982년 천연기념물 제317호로 지정됐다. 약 5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8.5m, 줄기 둘레 5.5m, 가지와 줄기 높이는 2.1m다. 성인 남성 10명을 위로 쌓은 높이며, 사람이 양팔을 벌려 나무 둘레를 둘러싸도 몇 명이 필요할 정도로 굵다. 조선시대 중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행이 삼월리에 내려와 집을 짓고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당진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회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지난 세월동안 집안에 큰 학자를 배출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공을 쌓을 인물이 태어난다고 믿었다. 또한 나무를 문 앞에 두면 잡귀의 접근을 막아 집안이 대대로 평안하다고 믿는다. 더불어 회화나무의 꽃이 만개하면 풍년, 적게 피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회화나무는 학자수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선비들은 한여름에 가득 피었다가 한꺼번에 지는 노란 꽃의 회화나무를 보고 “과거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며 시기를 가늠했다고 한다.

한편 좌의정을 지낸 덕수 이씨 연헌공파 이행은 이의무의 셋째 아들로, 당시 문장이 뛰어나고 글과 그림에도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는 학자수인 회화나무의 기상을 본받고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집 앞에 회화나무를 심었다.

또한 회화나무 뒤에는 집 한 채가 있는데 문패를 보아 덕수 이씨의 후손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전주 이씨 이강화 씨가 살고있다. 덕수 이씨 이재상 재무는 “삼월리 회화나무는 당진의 유일한 천연기념물이었지만 면천은행나무가 지난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두 개로 늘어났다”며 “현재 당진시에서는 피뢰침을 설치하고 주변 경관을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화나무는 살아있는 역사”라며 “500년의 역사를 보며 자란 나무로, 관광객들이 회화나무를 보며 역사를 배우고 다양한 것들을 느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 기획기사는 2017년 충청남도 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 보도합니다.

 

[미니인터뷰] 당진시청 문화관광과 남광현 문화재팀장

“보존 위해 주변환경 가꿔야”

덕수 이씨는 5대가 정승을 지낸 집안이에요. 덕수 이씨는 나무 하나 잘 심어서 가문이 융성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회화나무를 심은 곳은 풍수지리학적 위치가 좋아 500년 동안 나무가 잔병치레 하나 없을 정도로 잘 자랐다는 것이 대학교수들의 분석이에요. 이 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주변 환경을 가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당진시에서도 삼월리 회화나무를 널리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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