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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사진] 김기정 송악읍 기지시리 이장
6.25 참전용사 자랑스러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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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 찍은 사진이 많다. 나는 사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좋아했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사회활동을 많이해서 사진이 많다. 사진을 찾으면서 그동안 정리해놓은 사진앨범을 다시 보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나에게도 이랬을 때가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식구들에게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최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표현하고 살자고 이야기 한다. 표현하지 않고 마음에 쌓아놓으면 불화가 생긴다. 내 지론은 욕심을 버리고 사는 것이다.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삶이 좋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산다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첫 번째 사진은 현충사로 수학여행 갔을 적에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담긴 유일한 사진이다. 사진 속 나는 기지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수학여행 간다고 어머니를 졸라 장에서 모자부터 신발까지 새로 사 입었다. 내 친구들도 수학여행 간다고 한껏 꾸몄던 것 같다. 이 사진은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유문식 선생님께서 찍어주신 사진이다. 나는 학창시절 전교부회장을 맡는 등 모범생이었다. 생활기록부를 보면 내게 적합한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적혀있더라.

 

두 번째 사진은 기지시감리교회 종탑 옆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뒷줄에서 맨 오른쪽에 있는 아이가 나다. 같이 찍은 아이들은 교회학교 5~6학년 친구, 후배들이다. 사진 속 아이들 중에는 목사가 2명이나 있다. 현재 타 지역에서 살고 있다. 이 사진은 교회학교 교사이자 세종사진관을 운영하던 한승교 선생님이 찍어주신 사진이다.

외할머니는 송산감리교회 권사셨고, 어머니도 권사였다. 이때 교회학교 친구들은 200명 정도로 예배당이 꽉 차있었다. 여름성경학교를 할 때면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직접 만든 인형극을 보여주고 함께 찬양하곤 했다. 내가 다니고 있는 기지시감리교회는 1932년에 설립돼 올해로 85주년을 맞이했다.

 

세 번째 사진은 임시직으로 당진군청에 다닐 때 찍은 사진이다.
이 당시 내 나이는 20살이었다. 사진을 보니 이때 잠자리 안경이 유행했던 것 같다.

 

네 번째 사진은 1992년 제주도로 신혼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다.
천지연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세심한 아내가 커플티까지 준비해왔더라. 사진 속 포즈는 우리를 가이드 해주던 택시기사님이 요청하신 포즈다.

아내는 내 친구의 여동생이었다. 친구가 적극적으로 밀어줘서 결혼해 골인했다. 결혼 성사의 가장 큰 공인이다. 결혼 전 오다가다 몇 번 봤는데, 날씬하고 예뻤다. 아내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다. 기지시감리교회 출신 선후배 모임인 밀알회 활동을 하면서 아내와 정이 들었다. 결혼할 때 아내에게 고생은 하나도 안시키겠다고 했는데, 고생을 많이 시킨 것 같다.

 

다섯 번째 사진은 제67주년 6.25전쟁 기념식에서 아버지(김성환)를 대신해 수상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아버지는 6.25참전용사이신데, 내 나이 10살 때 돌아가셨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60년이 지난 뒤 나라에서 유공자를 찾아 상을 줬다.

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하셨을 때 나이가 20대 초반이라고 들었다. 아버지와 다른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정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일찌기 돌아가셨지만,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김기정 송악읍 기지시리 이장은...
·1963년 송악읍 기지시리 출생
·기지초·송악중·예산고 졸업
·인천 E1에너지에서 8년 간 직장생활
·만리향 중화식당 19년 간 운영
·현 기지시리 이장
·현 기지시감리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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