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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7.07.09 19:09
  • 호수 1166

강우영 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장, 홍성방송통신고등학교 2학년
소풍에서 얻은 늦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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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상에 빛나는 만학도의 수필 -

[편집자주] 늦은 나이에 배움의 길을 이어가고 있는 강우영 회장이 지난 2일 홍성방송통신고등학교 체험활동 감상문 쓰기 대회에서 학생 200여 명 가운데 금상(1위)를 차지했다. 강 회장은 어린 아이와 같이 설레는 마음으로 소풍을 다녀온 소회를 통해 자신의 만학도 이야기를 전해왔다. 

 

나는 요즘 한 달에 두 번 학교 가는 날이 너무도 기다려진다. 배고픔에 허기져 중학교 진학은 꿈에도 못 꿨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14살 이른 봄에 졸업 선물로 등에 뿔이 두 개난 지게를 선물로 받고, 논으로, 밭으로, 산으로 가는 어린 농부가 되었다.

가끔 일터에 오고가다 만나는 중학교에 진학한 옆집 완주가 검정교복에 흰 테 두른 모자 쓰고 책가방을 든 모습이 너무도 부럽고 멋져 보였다. 나는 큰 죄라도 진 것처럼 완주가 학교 갈 때쯤이면 대문 뒤에 숨어 문틈으로 내다보곤 했다.

그렇게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어느덧 반백년이지나 평생 꿈에도 그리던 중학생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지난 2013년 2월초 경북 대구와 전남 광주에 대한민국 최초 방송통신 중학교가 생긴 것이다.

나는 학교에 간다는 기쁨으로 이른 새벽부터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1시간여 차를 몰아 천안아산역에 도착해 6시 9분 KTX 첫차를 타고 1시간20여 분을 가서 동대구역에 내렸다. 거기에서 또 지하철을 타고 열두 정거장 가서 성당못역에 내린 다음 걸어서 20분, 그렇게 대구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중학교를 다녔다. 이렇게 3년 간 통학한 끝에 중학교 졸업장을 받아 들던 날은 기쁨보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한없이 울었다. 성공한 사람의 과거는 비참할수록 좋다고 했던가!

이력서 학력란에 만년 초등 졸을 면하고 이제 홍성방송통신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당당한 학생신분이다. 나는 매년 학년 초에 나눠주는 시간표를 받아들고 1년간 수업할 내용을 살펴보았다. 시간표에는 5월 7일은 춘계 체험학습 날이고 21일은 교내 체육대회 날이었다. 체험학습 날 자율활동 4시간은 소풍을 가고, 나머지는 봉사활동과 인성교육이 진행하게 될 것이라는 반장의 설명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소풍이란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60여 년 전 초등학교 시절 멀지 않은 승주산에 달걀 부쳐 싸주신 도시락 메고 즐겁게 소풍을 다녀온 후로 제대로 소풍다운 소풍을 못 가봤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5월 7일 고대하던 체험학습 날,  학교에서 준비해준 관광버스를 타고 태안에 있는 꾸지나무골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에 내리자 권환창 담임선생님은 “이제부터는 솔향기길을 걸어야 합니다. 적어도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을 걸어야 하는 험한 코스입니다. 혹시 자신이 없는 사람은 그냥 버스에 있어도 됩니다”라고 주의말씀을 전했다. 특히 나에게 나이도 있고 하니 차에 남기를 권하셨다.

나는 아직 고등학교 2학년 혈기왕성한 청년으로 착각하고 이미 걷기 시작한 대열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숨이 차고 가슴은 터지고 허리는 끊어지며 오금이 당겨 도저히 더는 못 가겠기에 되돌아가겠다고 하니 이곳 지리를 잘 아는 학우가 말하길,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단다. 돌아가는 길이 더 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내 스스로 택한 길이고 다른 학우들한테 누가 될까 내색도 못한 채 죽더라도 가다 죽자는 각오를 했다. 결과가 좋기 위해서는 처지보다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오르막길이면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았고 내리막길은 뒹굴다시피 하기를 여러 번. 어디쯤 왔을까? 깊은 골짜기에서 올려다보니 까마득한 봉우리에 몇몇 학우들이 쉼터에 둘러 앉아 땀을 닦는 모습이 보였다. 어떡하든 나도 저 곳을 따라가 학우들과 함께 땀을 닦으리라는 일념으로 앞사람 발뒤꿈치만 보며 오르고 또 올라 힘들게 따라갔다. 먼저 와 쉬던 학우들은 “경치가 너무 좋으니 좀 감상하시오. 우린 먼저 갑니다”라며 일어섰다. 학우들이 말 한대로 주변 경치는 너무도 좋았다. 천길 아래 조약돌 깔린 해변에 이름 모를 바위들이 드문드문 서있고 이따금 밀려오는 크고 작은 파도는 묘기라도 부리듯 제 몸을 던져 하얀 거품으로 사라지곤 했다.

가슴 속까지 시원한 바닷바람은 순식간에 젖은 땀을 씻어 주었고 연녹색 잎 사이로 5월의 햇살이 숨바꼭질하는 모습은 내게는 평생 처음 보는 풍광이었다. 나는 여태 이 좋은 경치를 왜 제대로 감상 한 번 못해본 채 앞사람만 쫓아 70 평생을 달려왔을까? 해 저문 바닷가에 해를 바라보는 배고픈 사람과 배부른 사람의 눈이 다르듯 길가의 경치는 안보이고 길만 보였으리라! 이제 인생의 젊고 늙음이 어렴풋이 구분되는 오늘에야 행복은 꼭 종착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간이역에도 있음을 깨닫는 소중한 소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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