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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엿보다 13 신암사
현존하는 유일한 문중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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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입은 풍수지리학자가 추천한 명당
구예의 아내 아주 신씨 성 딴 암자

▲ 신암사 극락전

신암사는 고려 후기 충숙왕때 능성 구씨 4대손인 이판전의사 구예가 송악읍 가교리에 터를 잡으면서 가문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찰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불상으로 봉안한 것이 금동여래좌상이다. 전체 높이가 88cm인 신암사 불상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금동여래좌상은 지난 1989년 보물 제987호로 지정됐으며, 신암사는 현존하는 국내 유일한 문중사찰이다.

신암사에 얽힌 전설
능성 구씨 4대손 구예는 이판전의사를 지내던 중 중국 사신으로 파견됐다. 그는 지나가던 길목에 몰매를 맞던 한 젊은이를 목격하게 된다. 구예는 걸음을 멈추고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젊은이는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매를 맞고 있던 것이었다. 그가 횡령한 금액은 1000냥이었고 구예는 그 자리에서 1000냥을 대신 갚아줬다. 며칠 지나지 않아 고려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그 젊은이를 다시 만났다. 구예는 생명의 은인이라며 자신을 거둬 종으로 삼아달라는 젊은이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 고려까지 데려왔다.

풍수지리에 능했던 젊은이는 은혜를 갚겠다며 구예의 묘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묘자리로 天자형과 人자형 地자형 세군데를 찾았는데 天자형은 집안이 대대손손 재물복을 갖게 되지만 인물복이 없는 터였고 人자형은 벼슬복은 있지만 재물복이 없는 터였다. 가족의 화목과 재물복, 벼슬복까지 두루 갖춘 地자형의 터가 바로 신암사가 위치한 곳이다. 구예는 이곳을 묘자리로 정하고 그가 죽은 뒤 아내인 아주 신 씨는 이 곳에 암자를 세우고 본인의 성을 따 신암사로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신암사 옆에는 구예와 그의 부인 아주 신씨의 묘가 세워져 있으며, 뒤에는 능성 구씨 집안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 신암사 인근에 위치한 능성 구씨 종중묘

크고 우람했던 구문노 장군
신암사 앞에는 힘자랑 바위가 있다. 병사공 구문노 장군(흑면장군)이 용마의 목을 베고난 뒤 분을 참지 못해 주먹과 무릎으로 바위를 눌러 자국이 남은 바위다. 어느 전투에서 왜 용마의 목을 베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키가 매우 크고 위엄이 있으며, 활과 말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세조 5년에는 전쟁 중 오랑캐들이 흑면장군을 피하라고 할 정도로 강인한 무인이었다.

■위치 : 송악읍 가교길 166-71
■문의 : 355-6196

※이 기사는 충남도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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