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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학교 어린이기자단 <그날>
조선인으로 살고 싶었던 왕자 이우

당진시대l승인2017.07.28 20:13l(11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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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일본 군복을 벗고, 조선에서 살고 싶소.”
독립된 나라를 꿈꾼 이우왕자는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으로 서른넷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됐고, 며칠 후인 1945년 8월 15일 조선의 광복을 맞은 날, 조국에서 장례식이 치러진다.

조선의 자존심 지킨 왕자 이우
이우 왕자는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아들이다.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의 왕족을 홍보 도구로 활용한 일본은 11살 어린 그를 일본의 볼모로 끌고 간다. 일본에서 육군사관학교를 다니면서도 조선어를 쓰며 금지곡이었던 <황성 옛터>를 불러 일본에 경고를 받기도 했으나 말을 듣지 않아 일본의  감시 대상이 됐다. 또한 그는 일본의 여성과 결혼해야 한다는 조선총독부의 강압에도 조선의 여인과 결혼해 조선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일제는 이우왕자를 일본군으로 만들어 살게 했으나 이우 왕자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바라던 광복을 앞에 두고 떠난 이우
태평양전쟁 일본이 침략한 여러 나라를 끌려 다니던 그는 잠시 조국으로 귀국해 운현궁에 머물며 조선에서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1945년 6월 일본으로 합류하라는 명령받고, 병을 이유로 미뤄보려 했으나 끝내 7월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는 근무지인 히로시마에서의 첫 출근길에 원자폭탄의 희생자가 됐다. 그날이 1945년 8월 7일이다.

그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이우 왕자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그의 혼은 태평양전쟁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 신사에 강제 합사돼 있다. 평생 일본의 볼모로 살며 조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던 이우 왕자는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도 돌아오지 못한 체 일본에 묶여 있다. 이우 왕자의 2017년 8월 7일이 슬프다.    

계성초 4학년 이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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