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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학교 어린이기자단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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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 여성변호사, 이태영
여자직업 남자직업 따로 있나?

직업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인식은 2017년인 지금도 우리의 문화 속에 남겨져 ‘여대, 여의사, 여군’ 등의 단어나 “여자가 무슨, 아서라! 괜한 짓 하지 말고” 등의 핀잔을 쉽게 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인권을 위해 평생을 노력한 이태영, 그가 8월의 그날 주인공이다.

꿈을 접어야 했던 여성변호사
“아들, 딸 가리지 않고 공부 잘하는 아이만 끝까지 뒷바라지 하겠다”는 이태영의 어머니 말씀이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어린 이태영에게 이 말은 큰 희망이 됐다. 어릴 때부터 오빠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노력하는 당찬 아이로 성장했다.
그는 여성으로서는 처음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최초의 여성 사법고시 합격자가 된다. 그러나 그가 이루고 싶었던 여성 판사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여자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변호사를 개업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된다.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호주제 폐지, 동성동본 금혼령 폐지, 가족법 개정 운동을 바꿔나가기 위해 많은 역할을 한다. 여성 변호사라는 점 때문에 여성들이 그를 많이 찾아왔고, 법률 지식이 부족한 여성과 어린이, 청소년들의 상담을 통해 불이익을 줄이고자 힘썼다. 또한 가정폭력, 아동학대가 명백한 범죄임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2005년 3월, 이태영 변호사가 호주제 폐지운동을 시작한지 53년 만에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 판사의 꿈을 접어야 했지만 변호사로서 더 당당한 일을 해낸 것이다.

막사이사이 상 수상의 영광
1975년 8월 4일, 이태영 변호사는 동양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 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 또한 세계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제정된 ‘세계여성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 ‘구글’에서는 훌륭한 여성들이 소개됐는데, 이곳에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인 이태영이 소개된다. 여성의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그의 노력이 우리나라에서 보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것을 주장했고, 사회에서 불평등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격려했다.
앞으로도 그가 원했던 것처럼 ‘여성의 목소리’를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계성초등학교 5학년 성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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