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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7.08.12 16:09
  • 수정 2017.08.14 09:31
  • 호수 1170

[아미산과 삶] 송영팔 나루문학회 회장
거미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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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사기소리 동네에 있는 농가주택이다. 농부의 힘찬 농기계 소리가 생명의 박동을 울리는 곳이다. 찬란한 아침 햇살도 있다. 방금 깨어난 새벽 산풀내음은 막내누이처럼 참 좋다.
 현관문을 열고 한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거미줄이 안면을 덮쳤다. 미처 피할 새도 없었다. 짜증을 넘어 화가 치밀었다. 소름마저 확 끼쳤다. 순간 빗자루를 들었다.

‘이걸 확 부셔버려, 아니면 거미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발로 밟아버려….’

순간 나는 갈등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너무 혹독하다 싶었다. 그에게 아침 만찬이라도 하게 하자 싶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순간 거미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여러날 동안 난 놈의 의미심장한 행동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덫에 걸린 나방이를 뱃속의 생명줄로 꽁꽁 옭아 매는 기술이 컴퓨터 같았다. 눈 깜빡할 사이였다. 내 빗자루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던 놈이었다. 기민한 동작이 놀라웠다.

 며칠이 지났다. 일상처럼 현관문을 무심코 나섰다. 순간 모기로 범벅이된 거미줄이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공격하였다. 기가 막혔다. 벌써 여러번이 아닌가. 지켜보고 참아준 내가 잘못이지. 감히 네가 내 출입문 앞에서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놈을 찾아냈다. 처마 밑에 죽은 듯이 시치미를 떼고 숨어 있었다. 모기약 통을 들이댔다.
“이놈아, 이 맹독을 뿌리겠다. 맛 좀 봐라!”

순간 거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먹고 살기 위한 투쟁이 아닌가! 너는 수명도 짧은 데 내가 양보하지.

 주말이면 아내가 서울서 내려왔다. 밖으로 나가던 아내가 갑자기 악!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거미줄로 얼굴이 온통 범벅이 되어 있었다. 거미조심을 알리지 않아서 인가. 온순한 아내였지만 방어능력은 실로 대단했다. 놈을 밟아버리고 울며 서 있는 아내의 모습이 왠지 낯설어 보였다. 이미 거미는 사채로 변해 있었다. 남아있는 거미줄은 사정없이 제거해 버렸다. 이윽고 거미의 삶은 막을 내렸다.

 거죽만 남아 있는 거미의 주검은 보기에 애초로웠다. 제 수명도 채우지 못하고 죽은 것이겠지. 그런데 알다가도 모를 일은 미안하다는 마음이 든 것이었다. 그런 그가 애처로워 보인 것은 어인일인가.

“거미야, 원망하지 마라. 모든 건 네 탓이지, 내 탓은 결코 아니다. 네가 쳐놓은 덫은 우리들에게 너무 불편했단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그와의 인연은 끝났다.

 여덟 개의 팔다리 묘상하게 생긴 녀석, 똥고에서 뽑아낸 생명선 명주실을 가만히 만져보며 생각해 보았다.

“너는 내게 도움을 주고 있었구나.”

덫이 거기 있으니 방충망 틈새로 파고드는 독한 모기 놈이 들어오지 못했으리라. 그러니 그가 내게 해꼬지만 한 건 아니었다.

 거미 사망 사건이 있은 후에도 그들은 결코 나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팔각의 덫을 목 좋은 곳에 펼쳐 놓고 있었다. 다시 덫을 놓을 수 밖에 없는 거미의 삶이 오늘따라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그라고 어디 하찮은 생명이랴. 나 또한 그와 같은 생명일진데.                

>>설이란 고전에서의 수필의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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