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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0 15:20
  • 호수 1171

여성이 뛴다 13 이온유 미술심리치료상담사
“워킹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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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아들과 떠난 세계 여행
“바빠도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선교 활동을 위해 일본을 찾았고 미국 하와이에서 미술심리치료를 공부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의 6개월 간 생활하다 이집트, 이스라엘, 대만 등 아들과 함께 해외를 오갔다. 그 후 다시 당진을 찾았고 현재 미술심리치료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당진 출신인 이온유 상담사는 낯선 타국에서 결혼과 임신, 출산을 하고 또 워킹맘으로 살았다. 그는 “가정과 사회에서 여러 역할을 해야 하는 워킹맘들을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 역시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면서 아이에게 소홀했던 적이 있었어요. 일본에 있을 땐 아이가 엄마를 무서워 할 정도였죠. 하지만 바빠도 시간은 충분히 만들 수 있어요. 잠깐의 시간이라도 아이의 눈을 맞춘다면 아이 역시 엄마의 진심을 알아요. 워킹맘들을 응원합니다.”

채운동 출신으로 탑동초와 당진중, 당진정보고를 졸업한 이 상담사는 어렸을 때부터 탑동감리교회를 다녔고 선교의 꿈을 키우기 위해 나사렛대학교에서 해외선교학을 전공했다. 졸업과 동시에 일본으로 선교활동을 떠났다. 하지만 낯선 타지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출산과 육아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 당시 ‘욘사마’와 ‘빅뱅’ 등으로 일본에는 한류 열풍이 불었고 일본어와 한국어가 가능했던 그는 여행사에서 근무하게 됐다.

하지만 잦은 야근과 바쁜 업무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친인척도, 지인도 없던 일본에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가끔 교인들의 집에 아이를 맡기곤 했다는 그는 “아이를 맡아 주시는 분을 믿지만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 손에 옮겨 다니는 게 아이에게 좋진 않았을 것”이라며 “개인적인 어려움도 있었고 아이도 힘들어 해 모든 것을 접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아이와 함께 미국 하와이로 떠났다. 하와이에서 내적치유를 받기도 하고 공부도 시작했다. 6개월 간의 과정을 거쳐 아이와의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이 상담사는 “이전엔 외국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아등바등 살며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풀곤 했다”며 “아이는 어렸고 그로 인해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적 치유를 통해 아이와의 관계가 많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공부를 마친 뒤 일본에서 만난 미국 플로리다의 한 선교사 할아버지 가정에서 지내며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세계 여러 곳곳을 여행했다. 그 후 고향인 당진을 찾아 충남당진지역자활센터에서 흙놀이 심리치료를 하기도 했으며 평택대학원 상담대학원 미술심리치료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본격적으로 초·중·고등학생과 성인을 위한 미술심리치료를 하고 있다.

“한 번은 아이가 ‘엄마는 날 소중히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했어요. 충격이었고 많은 반성을 했죠. 바쁘더라도 아이에게 충분히 사랑을 줄 수 있어요. 잠들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만 해줘도 아이들은 알죠. 누구나 틈은 있어요. 바쁜 여성들이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가며 한 번쯤은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온유 미술심리치료상담사는?
-1976년 생
-채운동 출신
-탑동초·당진중·당진정보고 졸업
-나사렛대학교 해외선교학 졸업
-평택대학원 상담대학원 미술심리치료 석사 취득
-초·중·고 미술심리·진로교육 등 강사
-일본어 통역
-탑동감리교회 청년부 전도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한수미 기자 d911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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