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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익 대호지면 장정리 새마을지도자
장발에 나팔바지 “멋 좀 부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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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호지면 장정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했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했다. 서울과 인천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는데 안해 본 일이 없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9남매 중 다섯째로 나서 자랐고, 부모님을 모시고자 29세 때 고향으로 내려왔다.

대호지면 장정리 새마을지도자는 올해로 6년 째 활동하고 있다. 지도자 생활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그동안 지도자로서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2012년과 2014년에 우리마을 사랑운동에서 최우수 마을로 선정됐다. 마을길에 예쁜 꽃을 심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길을 조성하고 폐비닐, 폐건전지, 농약병 등을 따로 모아 반드시 분리 배출하는 등 장정리를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고자 주민들이 똘똘 뭉쳤다. 또한 나는 2013년에는 우수지도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마을이 날로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곤 한다.

사는 게 바빠 앨범을 자주 들여다보진 못했다. 인터뷰로 인해 간만에 앨범을 들여다본다. 나는 가족들에게 나중에 산 속에서 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가족들은 내가 살고 있는 곳도 충분히 시골이라며 어딜 가냐고 한다. 나는 자연이 좋아, 여생을 자연에서 살고 싶다.

 

첫 번째 사진은 18세 때 페인트질 하다가 찍은 사진이다. 이 친구가 내 앨범 속 자주 등장하곤 한다.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가족들도 내가 많이 찍어주곤 했다. 특히 아이들 사진을 많이 찍었다. 최근에는 농사일하랴 지도자 생활하랴 바빠서 사진 찍는 것이 뜸하다.

두 번째 사진은 조금초등학교 43회 동창회 때 찍은 사진이다. 
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이 중 현재 장정리에 살고 있는 친구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2명이 당진 시내에서 살고 있고, 다른 친구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때는 집안일 돕느라 학교도 잘 못 나갔다. 당시엔 나 뿐만이 아니라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사진은 친한 후배 이무하와 삽교천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후배는 인천에 살고 있다. 후배에게 아내의 고등학교 동창을 소개시켜줬다. 당시 나는 아담하고 머리도 길었던 터라, 다들 나를 여자로 봤다. 친형과 서울에서 수퍼를 운영할 적에는 동네에서 “젊은 부부가 수퍼를 운영하는데 떼돈을 벌었다더라”하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재밌는 에피소드다.

네 번째 사진은 나와 아내의 결혼 사진이다.
내 나이 30세에 23세 서울 아가씨인 아내(양정애)와 결혼했다. 나는 장가를 늦게 간 편이다. 그때 대호지면에만 동갑친구 15명이 있었는데, 내가 친구들 장가를 다 보내고 마지막으로 갔다. 우리는 장모님 중매로 만났다. 부지런히 일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며 장모님이 딸을 소개해줬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 지 한 달 만에 식을 올렸다. 나는 아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고 했을 때 결혼을 결심했다. 아내 또한 20년 간 시어머니와 고부갈등 없이 잘 지냈다고 이야기 한다. 나와 아내는 슬하에 1남2녀를 뒀다. 현재 큰 딸 이슬이는 태안에, 둘째 딸 보람이는 안산에 산다. 막내 아들 건형이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다섯 번째 사진은 제주도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올해도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를 가려고 했는데, 아들이 운동하다 다친 바람에 여행이 무산됐다. 아들은 본인 때문에 가족 여행이 무산됐다며 미안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다음에 가면 되니 괜찮다. 
 

 

>>조주익 대호지면 장정리 새마을지도자는

·1956년 대호지면 장정리 출생(현 62세)

·조금초 졸업 ·약 20년 간 서울, 인천에서 타지 생활

·현 대호지면 장정리새마을지도자(6년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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