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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6 13:10
  • 수정 2017.08.29 11:10
  • 호수 1172

당진시청 손학승 회계과 경리팀장·전민협 세무과 주무관
26년 만에 만난 ‘생명의 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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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소년 구한 ‘슈퍼맨’ 아저씨
“한 지붕 아래 한솥밥 먹고 있을 줄이야”

 

손학승 팀장의 이야기

1991년도 가을, 어느 일요일이었다. 형님과 함께 석문면 교로리 선착장(현 당진화력 회처리장 부근)으로 낚시를 갔다. 제방에 앉아 낚시를 하는데, 뗏목을 타고 낚시를 하던 두 소년이 보였다. 뗏목의 한 쪽은 제방에, 또 다른 한쪽은 배에 묶여 바다에 떠 있었다. ‘고 녀석들, 낚시 참 제대로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밀물이 들어왔다. 집에 가야한다고 생각했던지, 뗏목을 타고 있던 한 소년이 바다에 뛰어들어 망태와 낚싯대 등 짐을 챙겨 먼저 뭍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뗏목에 남아 있는 소년을 데리고 나오려고 다시 돌아갔다. 아마도 남아 있던 친구가 수영을 못했던 모양이다.

제방까지 연결된 밧줄에 의지해 두 사람이 바다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고 있었는데, 뭔가 심상치 않았다. 이 친구들이 갑자기 물 아래로 쑥 들어가 물을 먹더니, 서로 붙잡고 있던 두 사람이 분리됐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친구가 제방에 올라와 주변 사람들에게 친구를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주변엔 어떤 구조장비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입고 있던 추리닝을 벗었다. 함께 있던 형님이 “어딜 가냐”며 붙잡은 손을 뿌리치고,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다.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보다 저 친구가 중국 앞바다로 떠내려갈지, 인천 앞바다로 떠내려갈지 시신조차 못 찾게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며 배운 개헤엄으로 허우적 허우적 소년이 빠진 곳을 향해 가는데,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머리카락이 수면에 둥둥 떠 있는 게 보였다. 머리카락을 잡고 끌어 올렸더니 소년의 눈은 이미 눈이 하얗게 뒤집어진 상태였다. 정신을 잃은 것이다.

선착장까지 소년을 끌고 나가는 건 무리 일 것 같아, 더 가까워 보이는 뗏목으로 향했다. 누군가 한 사람이 바다로 뛰어들어 함께 소년을 구했다. 사람들에게 뗏목에 연결된 밧줄을 끌어달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급한 대로 소년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인공호흡을 하니 숨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입과 코, 귀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정신 차리라고  뺨을 때렸는데,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진 않았다. 소년이 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나서야 한숨 돌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수고했다고 하는데, 기운이 다 빠져 형님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 후로 바다에 나갈 때면 종종 그 소년이 생각났다. 소년은 살았을까? 살아 있다면 많이 컸을 텐데….

전민협 주무관의 이야기

석문면 교로리에서 나고 자라, 바다는 놀이터였다. 14살 어느 날, 그날도 일가친척이면서 동갑내기 친구와 선착장으로 낚시를 갔다. 바다에 새 것으로 보이는 뗏목이 떠 있길래, 저기에서 낚시를 하면 좋겠다 싶었다. 다행히 물이 빠진 상태라 바다가 깊지 않았고, 뗏목에 올라 한참 낚시를 즐겼다. 그날따라 망둥이는 어찌나 잘 잡히던지, 밀물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신이 났다.

물이 꽤 많이 들어와서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친구가 먼저 짐을 뭍으로 가져다 두고는 다시 돌아와, 자신의 다리를 잡으라고 했다. 친구는 밧줄을 잡아 당겨 제방을 향해 가고, 나는  친구의 다리를 잡고 나가자는 것이었다. “짜식, 머리 좋은데!”라고 생각하면서 바다에 뛰어들어 친구의 다리를 잡았다.

그런데 밧줄이 느슨해지면서 자꾸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당황한 친구도 발버둥을 쳤다. 그 와중에 친구를 계속 붙잡고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떨어진 뒤 물을 먹으면서 허우적대는데, 저 멀리에서 한 아저씨가 옷을 벗고 있었다. 빨간 팬티를 입은 아저씨가 마치 슈퍼맨 같다고 생각하던 찰나, 구하러 올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던 것일까. 그 이후로 정신을 잃었다.

어느 순간 아프도록 가슴에 압박이 오고, 누군가가 막 뺨을 때리는 게 느껴졌다. 정신 차리란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 왔다. 그러나 얼마 뒤 다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일주일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명치 쪽에 있던 종양을 발견해 떼어내는 수술까지 마쳤다. 날 구해준 아저씨 덕분에 몰랐던 병까지 알게 됐고,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어머니는 아들을 구해준 이가 공직자라는 얘기를 얼핏 듣고는 수소문하고 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군청 직원인지, 경찰인지, 소방관인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지난 2004년 내가 당진시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후에도 혹시나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사고 이후 그날의 기억은 26년 동안 늘 가슴 한편에 무겁게 자리 잡았다. 그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린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평생 ‘작은 아버지’로 모시겠다”

그렇게 2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21일 손학승 팀장은 동료들과 우연히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던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 옆에 있던 전민협 주무관의 귀가 그들에게 향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이상했다. “팀장님, 그거 저인 것 같아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랜 시간 서로의 마음에 품고 살았던 기억 속 주인공이 바로 한 지붕 아래서 한솥밥을 먹고 있던 선후배라니!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두 사람은 부둥켜안았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소주 한 잔 기울이며 기억의 조각을 맞춰나갔다. 이날 자리에서 전 주무관은 손 팀장에게 큰절을 올리며 “평생 ‘작은 아버지’로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손학승 팀장은 “넓고도 좁은 게 세상이더라”며 “얼굴도 기억나지 않아 마치 가상 속에 존재하는 것 같던 그 소년이 바로 옆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신기하고도 희한한 인연이 있나 싶어, 정말 피붙이 같은 생각이 든다”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살아난 더없이 소중한 인생인 만큼 공직생활도 열정을 갖고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민협 주무관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데, 위험을 무릅쓰고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며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조만간 부모님도 함께 만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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