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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 입력 2017.08.26 13:47
  • 호수 1172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이만유 장군
당진지역의 문화재를 엿보다 19
이만유 장군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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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 평정하고 이등공신 ‘한원군’ 칭호 얻어
도난 우려, 문중에서 직접 관리 중

이만유 장군(한산 이씨)은 고려 말 문신 이색의 15대 자손이다. 1719년(숙종 45년) 무과에 급제해 벼슬에 올랐으며, 의주부윤, 형조판서, 의금부사, 오위도총영 등을 지냈다. 1728년에는 도순무사(나라에 난리가 났을때 임금의 명을 받고 지방에 나가 상황을 살피는 일을 맡은 벼슬)에 올라 경상도좌수사를 지냈다. 같은 해에는 청주에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 오명항의 관군과 함께 반란군을 평정했다. 이 공으로 이등공신이 됐으며, 한원군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만유 장군은 나이가 들어 전남 담양읍 천변리에 살았으며, 묘소는 전남 담양군 월산면 관음리에 있다. 그를 모시는 사당으로 담양의 유현사와 당진의 한원사가 있다.

칼·영정 등 9점의 유품
무신 이만유 장군의 유품은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에 있는 한원사에 보관돼 있었지만 이동이 가능한 문화재이기 때문에 도난의 우려가 있어 한산 이씨 문중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유품은 장검, 화살통 등인데 장검의 경우 길이 126cm, 무게 2kg, 화살통은 길이 98cm, 둘레 25cm다. 이외에도 교지 1지, 영정첩 및 영정 3점, 기타 3점 총 9점으로, 1978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됐다. 장검은 손잡이 끝에 무늬가 있고 칼집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 위에는 고리가 달려있다. 활통은 동으로 만든 6각형 모양으로 뚜껑부분에 장식이 있다.

영정, 문화재적 가치 커
한편 이만유 장군의 영정은 관복 차림의 초상화다. 조선시대에서 영정이 가지는 가치는 굉장했다. 당진시 문화관광과 남광현 문화재팀장은 “영정은 임금이 그 사람에 대한 공을 인정했다는 증거”라며 “조선시대에는 본인의 얼굴을 함부로 그리지 못했기 때문에 영정은 엄청난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당, 족보, 영정 등은 집안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됐다”며 “게다가 음서(공덕에 따라 자손을 관리로 서용하는 제도)로 들어갈 수 있는 가치가 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충남도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미니인터뷰] 한산 이씨 후손 이부원 씨

“문화재 관리 제도 개선돼야”

“이만유 장군은 저의 12대 할아버지입니다. 원래는 사당에서 유품을 보관하려 했죠. 문화재 지정 이후 충남도에서 제공한 금고에 보관했지만 녹슬었고, 유품 도난이 우려돼 문중 차원에서 극비리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만유 장군의 유품은 그 분의 업적을 봤을 때 문화재 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현재 보관중인 유품보다 사라진 서찰이 더욱 가치있는 문화재였습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후손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지방문화재를 믿고 맡길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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