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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17 18: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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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직 고대노인대학 학장
“즐겁게 살며 베푸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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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간직하고 있는 사진이 많다.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앨범에 정리해 모아뒀는데, 오랜만에 사진들을 들여다 보니 옛 추억이 떠올라 감회가 새롭다.

나는 고대면 장항2리가 고향이다. 어려서는 인천에서 생활했고, 중학교 2학년 무렵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뒤 6.25전쟁이 터지면서 경황없이 고향인 당진으로 피난 와 정착하게 됐다. 학교를 졸업한 뒤, 조금초등학교와 석문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했다.

석문중학교에서 40년 간 재직한 뒤 교원정년단축 정책에 맞물려 기존보다 3년 빠른 1999년에 퇴직하게 됐다. 퇴직하고 나니 아쉬웠지만 교직에 있을 때 보다 더 많은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 나는 2002년 필리핀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라오스, 인도네시아, 네팔 등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지금도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선교, 의료, 교육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첫 번째 사진은 보덕사에서 아내와 신혼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에는 보덕사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고 그곳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었다. 
아내 노일남은 고대면 성산1리가 고향으로 나와는 어릴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 아내는 나의 막내 여동생과 고산감리교회를 함께 다니던 사이다.  아내를 소개로 만나 1961년 27살의 나이에 결혼했다. 나와 아내는 슬하에 3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두 번째 사진은 당진중학교에서 외교생(타 지역에서 공부하다 피난 온 학생) 시절 친했던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사진 왼쪽에 있는 사람은 영어를 가르치던 유승호 선생님이다. 유 선생님의 별명은 양코였는데 서양인의 코처럼 크다고 해서 붙여졌다.

 

세 번째 사진은 석문중학교 재직시절 때 사진이다.
당시 한 반에 60명~70명 정도의 학생들이 교육을 받았다. 2인용 긴 책상에 앉아 책상 가운데 금을 그어놓고 선을 넘어 오지 말라며 장난을 치던 어린 제자들은 어느새 반듯한 사회인으로 자랐다. 제자들과는 지금도 자주 만나고 있다. 지난 스승의 날에 만났던 제자들은 사진 속 어리고 짓궂은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나이 먹어간다는 생각에 심정이 복잡하기도 했다.

 

네 번째 사진은 2002년 봉사활동을 위해 찾은 필리핀 미션센터에서 찍은 사진이다.
미션센터의 내부는 보건소처럼 진료실, 치료실과 수술실로 이뤄져 있다. 미션센터는 현재 현지 의사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의료행위가 지속되고 있다. 필리핀에서의 봉사 활동을 통해 일회성의 봉사가 아니라 현지인들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선시켜줄 장기적 경제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러한 교훈은 네팔에서의 봉사활동이 의료 봉사에만 그치지 않고 새마을 교육 봉사활동으로 확대된 계기가 됐다.

 

마지막 사진은 2008년 아프리카 대륙의 카메룬에서 봉사활동했을 때 현지인들과 찍은 사진이다. 다시 생각해도 이 봉사활동은 여러 약사와 의사들의 의약품 지원이 있어 지속될 수 있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 많다. 이 부족민들의 마을은 중앙아프리카 밀림 속 국경지대에 위치해 있다. 우리는 지원받은 의료약품을 가지고 밀림을 해쳐 마을로 들어갔는데, 이동 시간만 보통 7~8시간이 걸렸다.

>>이병직 학장은

·1936년 고대면 장항2리 출생(현 82세)

·당진중·당진농고 졸업

·조금초등학교와 석문중학교에서 교직 생활

·전 당진시게이트볼협회 회장

·현 고대면 노인대학 학장

·현 기독교대한감리회 충청연회 당진서지방 원로장로회 회장

·현 속사경로당 회장

구본슬 기자 qhstm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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