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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으로추억속으로] 박시양 송악읍선거위원장
아내와 함께 산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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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남 박씨, 연암 박지원 선생이 나의 고조할아버지다. 고조할아버지가 면천에 오면서 5대째 당진에 살고 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1950년 셋째 작은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갔다. 작은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에게 무척 잘해주셨지만, 나는 하교하면 곧장 친어머니에게로 갔다가 안 간 척하고 다시 작은아버지의 댁으로 가곤 했다. 내가 적응하지 못하자 결국 어머니와 동생이 사는 집으로 다시 들어가게 됐다.

나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일을 하게 됐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큰형님은 군에 입대했고 남자라고는 나뿐이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래서 농사일이 없는 겨울에 이웃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난 배움에 한이 많아, 지금도 충남학 등 무엇이든 배울 곳이 있으면 열심히 배우곤 한다.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이다.
세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나다. 나는 1939년 송악읍 금곡리 13번지에서 태어났다. 중흥리는 1945년 8월15일 해방 전에 이사하면서 정착했다. 그리고 9살에 송악초에 입학했다. 내가 늦게 입학하게 된 것은 아버지를 여의고 일제강점기, 해방을 거치면서 어수선할 때였기 때문이다. 당시엔 빨리 공부를 하게 되면 일본군에 끌려간다는 공포가 있었기에 늦어졌다. 
나 어릴 적 졸업앨범은 지금 졸업앨범과 완전히 다르다. 과거에는 종이로 된 작은 흑백 앨범이었다. 졸업앨범을 보면 “이럴 때도 있었구나”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초등학생 때는 모범생이었다. 그래서 주번을 맡아서 하곤 했다.

두 번째 사진은 1957년에 찍은 결혼사진이다.
나는 19세에 한 살 연상인 아내 이연호 씨와 결혼했다. 올해가 결혼 60주년으로, 3남3녀를 두고 있다. 올해 큰딸은 57세다. 나는 아내와 60년을 살면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막말을 한 적도 없고, 싸울 이유조차 없었다. 늘 고맙고 미안하다. 우리 내외는 열심히 건강하게 살고 있다. 농사지어 각지에서 생활하는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먹거리를 대고 있는데, 요즘 아내의 무릎이 아파 걱정이다.

세 번째 사진은 군대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1961년 1월 17일에 경기도 일동에 있는 5군단포병사령부에서 군생활을 했다. 부대이동으로 제대는 홍천에서 1963년에 했다.

네 번째 사진은 2007년 덕유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산을 자주 간다. 신평 서해중앙신협 산악회를 통해 매월 첫째 주 화요일에 등산을 간다. 공기도 좋고, 울창한 소나무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소나무처럼 늘 변함없이 봉사하며 살고 싶다.

마지막 사진은 송악읍 이장들과 독립기념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현재도 지역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 박시양 송악읍선거위원장은
·1939년 송악읍 금곡리 출생
   (현 79세)
·송악초 졸업
·전 송악읍중흥리새마을지도자
   (1971~1797)
·전 송악읍 중흥리 이장
   (1992~1998)
·현 성균관유도회 당진시지부
   송악지회장
·현 송악읍선거위원장(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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