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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 대축일 미사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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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와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이동 대축일

솔뫼성지(주임신부 이용호 바오로) 아레나에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이 지난달 17일 진행됐다.

이날 부평1동 성당(주임신부 제정원 베드로)에서 본당설립 25주년을 기념하며 전 신자가 성지순례로 솔뫼성지를 찾았으며 인천 만수동 성당과 서울 도림동 15구역 순례자들까지 더해 800여 명이 이날 미사를 봉헌했다.

한편 이날 대축일 행사에 앞선 지난 16일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25년의 생을 끝으로 1846년 새남터에서 휘광이의 8번째 칼을 맞고 순교한 날이다. 김대건 신부 집안은 4대에 걸쳐 솔뫼성지에 살았으며 한국 초대교회의 4대 박해를 겪어 한국 천주교회의 박해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날 이용호 신부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마지막 순교 장면을 묘사한 글을 낭독했다. 이 글은 페레올 주교가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순교 장면을 묘사한 글로, 달레 신부에게 전한 것이다.

이용호 신부는 “순교라는 말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증거증언 하는 행위며 교황님의 말씀으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행위가 바로 순교”라며 “순교의 본뜻을 깨달아 우리 모두 이 시대애 순교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다음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죄목과 순교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죄목과 순교>
김 안드레아는 국사범으로 다뤄져 처형됐다. 9월 16일 죄수는 옥에서 끌려 나왔다. 투박한 가마 위에 김대건 안드레아를 앉혀 그를 군중 사이로 끌고 나갔다. 관장은 그에게 선고문을 읽어 주었다. 선고문은 그가 외국인과 교섭을 가졌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내린다고 적혀 있었다. 그때 김대건 안드레아는 크게 소리쳤다.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이했으니 여러분은 내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을 한 것은 내 종교를 위해서였고, 내 천주를 위해서 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 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이런 말을 한 후 옷을 반쯤 벗겼다. 이후 관례에 따라 처형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도 순교자는 냉정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그는 다시 말했다. “자, 치시오. 나는 준비 다 되었소.” 칼을 든 군사 열두 명이 김대건 안드레아의 목을 내리쳤고 여덟 번째 칼을 맞고야 숨을 거뒀다. 1821년 8월에 충청도에서 태어난 김대건 안드레아는 처형 당시 만2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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