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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3 21:13
  • 수정 2017.10.16 18:46
  • 호수 1178

[세상사는 이야기]모진 세월, 함께 걸어온 인생길
대호지면 적서리 고태균♡김영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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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된 손가락에 죽음 생각키도
두 번째 만남에 혼인 성사…함께 산 50년

 

한 평생 쉽지 않은 길이었다. 지나간 날을 돌아볼 겨를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버거운 삶이었다. 그래도 곁에 아내 김영례 씨가, 또 남편 고태균 씨가 늘 있었다. 모질고 힘든 길을 함께 한 이들이 지난달 27일 당진시여성단체협의회의 주관 하에 금혼식을 올렸다. 남편 고태균 씨는 “마음씨 곱고 착한 아내가 지금까지 옆에 있었기에 어려운 길을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내 김영례 씨는 “남편 역시 말 한 마디 나쁘게 안 하고 속 썩이는 일 없이 평생 함께 해 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여자구나” vs. “잘생겼네”
그들의 만남은 군 복무를 하던 고태균 씨가 휴가를 나와 서산면 음암리에 있는 김영례 씨 집을 찾아간 것부터 시작된다. 그 당시 남녀 사이 인연은 어른들이 정해주는 대로 따르는 게 일반적이었고 이들 역시 그렇게 부부의 연을 맺었다. 스무살도 안 된 아내 김 씨는 혼인하기 싫어 남편 고 씨가 집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밖으로 도망쳤단다. 그때 양쪽 머리를 곱게 딴 김 씨의 뒷모습이 고 씨가 기억하는 아내의 첫 모습이다. 고 씨는 “뒷모습을 슬쩍 봤는데 머리를 곱게 땋은 모습을 보고 ‘여자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사진으로 고 씨의 모습을 처음 본 김 씨는 “훤칠하니 잘생겼더라”며 “하지만 당시엔 너무 부끄러워 도망치기 바빴다”고 말했다.

두 번째 만남에 혼인 성사
그 후 고 씨가 제대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혼례 절차가 진행됐다. 고 씨는 다시 김 씨의 집을 찾았고 그 날 바로 약혼했다. 그렇게 처음 제대로 얼굴을 본 날 약혼을 하고 사진 한 장을 찍고, 그 다음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땐 족두리를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간단히 차린 상을 한 가운데 두고 서로 인사하는 것이 결혼식의 전부였단다. 그리고 잔치국수를 마련해 며칠이고 마을 사람과 나눠 먹은 것이 끝이었다. 신혼여행도 없었다. 고 씨는 “두 번째 만남에 아내를 처음 봤는데 참 예뻤다”며 “나를 따라 적서리로 와서 살면서 고생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앞만 보고 산 세월
결혼 이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슬하에 2남1녀를 두었지만 당장에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웠다. 고 씨는 “먹을 것은 없고 애는 울고 있고,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며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방앗간에서 3년 간 더부살이 하며 일을 했다. 당시엔 경운기도 없어 소를 끌고 다니면서 땅을 갈아 일했다. 한 달 봉급이라고는 보리 두 가마가 전부였다. 또 염전에 석축을 쌓기 위해 새벽부터 나가 괭이로 돌을 캐는 일을 했다. 부부는 “그때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다”며 “힘든 것이 뭔지 모를 정도로 앞만 보고 살았다”고 말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이기 위해 부부가 대호지면 도이리까지 1시간 걸어가 감나무를 사온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옴팡 집에서 내 집 마련까지
결혼하고 처음 살았던 곳은 산 중턱에 마련된 옴팡집이었다. 방 두 개와 부엌 하나가 전부였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고 씨를 위해 형이 출가하며 논 두마지기를 줬지만, 알고보니 국유지였고 땅을 사야만 했다. 새끼를 밴 돼지를 급히 팔고도 빚을 져야 할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어렵게 얻은 땅에 농사를 짓고 또 낮이 되면 다른 사람 집에 가서 일을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일궈 가며 땅을 사고 집을 마련했다. 부부는 “처음 땅을 샀을 때 참 기뻤다”고 회상했다.

죽을 생각도 해
한편 고 씨에게 불운한 사고가 발생했다. 소를 키우던 그는 여물을 먹이기 위해 작두로 볏짚을 자르다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일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소를 팔아보려고 했지만 소 값이 뚝 떨어져 그마저도 어려웠다. 눈물을 머금고 소를 땅에 묻어야 했단다. 그는 “생계도 막막한 상황에서 손까지 다쳐 서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해 죽을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밤새 베개가 다 젖도록 눈물을 흘린 그는 동이 트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굳세게 살아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들은 바쁜 나날에도 틈틈이 봉사에 나서고 있다. 현재 김 씨는 충남지체장애인협회 당진시지회 부회장과 마을 노인회장 등을 맡고 있다. 그의 소식을 들은 당진시여성단체협의회에서는 이들 부부를 금혼식 대상자로 추천했고, 이번에 금혼식을 올리게 됐다.
김 씨는 “몸에 흰 반점이 많아 드레스를 입기 싫었다”며 “하지만 금혼식을 원하는 남편이 실망할까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고 씨는 “추천을 받아 금혼식 대상자가 된 만큼 그에 대한 보답을 위해 금혼식을 올리고 싶었다”며 “그날 모두가 축하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지금까지도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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