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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7.10.13 21:31
  • 수정 2017.10.16 19:19
  • 호수 1178

[독자마당] 최명환 한국진달래문학관 관장 공주교대 명예교수
당진문화 전통의 계승과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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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동양문화는 문사철이 주도하였다. 말글로써의 문학, 행위로써의 역사, 방법으로써의 철학이 바탕을 이루었다. 최치원과 심훈은 시문(詩文)으로 당진을 빛냈고, 그런 문인들이 당나라로 나들던 나루가 ‘당진’이다. 김대건 신부의 철학적 탐구와 신학적 구도의 순례도 여기서 출발하였다.

세종대왕은 이러한 문사철의 전통을 15세기에 ‘과문사철’로 바꾸어 조선 과학의 경쟁력을 드높이고, 훈민정음 창제로 금자탑을 쌓았다. 이렇게 문사철의 삼원 체계를 ‘과학, 문학, 역사, 철학’의 사륜 체제로 바꾸면 한국문화사를 새로 쓸 수 있다. 국내 최초의 철강회사 현대제철은 고로 사업으로 지속 성장의 발판을 당진에 마련하였다. 그 문화사적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평등의 꽃을 피우려고 율도국을 세운 홍길동의 나라, 부모를 위하여 연꽃으로 부활한 심청이의 조국, 계절에 맞춰 향기로 꽃을 피워 사랑의 꿈을 이룬 성춘향과 이몽룡의 조선이었음에도 기업인 출신 지도자 이명박 전 대통령도, 공학 전공의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런 꿈을 깨고 말았다. 고운(최치원)과 심훈도 초청받고, 신경림과 이근배가 심훈문학대상을 받은 이 가을, ‘촛불’과 ‘태극기’가 화해하는 과학으로 새질서 새문화를 일으켜야 할 시점이다. 과문사철로 거듭나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훈민정음이 과학적인 문자임을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증명해 주었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이해하기 쉽다. 세종대왕은 장기계획을 세워 문자 창제의 기반을 다졌다. 1432년 간의대를 설치하여 우주를 관찰하였고, 1433년에는 물시계 혼천의를 만들어 시간 기준을 제시하였으며, 1434년에는 해시계 앙부일구와 표준시계 자격루를 제작하여 시간의 엄밀성을 생활화하였다. 1441년에는 측우기를 만들어 강우량을 측정하였고, 1430년부터 16년 동안 도량형 제도를 연구하여 1446년에는 드디어 척도 정비 사업을 완성하였다. 이런 도량형 완성과 훈민정음 반포가 같은 해 같은 시기였음에서 과학의 창조와 문자의 창제가 같은 맥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술과 척도의 진화를 관찰할 수 있는 공장과 박물관이 당진에 있다. 송악읍의 현대제철과 신곡동의 한국도량형박물관이다. 우리는 여기서 현대 철강의 첨단 기술과 중세의 도량형기로 과학적 상상에 젖어 볼 만하다. 뜨거운 강판과 차가운 도량형기는 우리 눈을 씻어 주기에 충분하다. 과학의 눈으로 보아야 문학의 세계가 열리고, 철학의 눈을 뜰 수 있다. 그래서 현대제철과 도량형박물관이 새로운 탐구의 마당이 될 수 있도록 ‘길’도 넓혀 주어야 한다. 그걸 기록하는 만큼 우리 당진문화사가 새로 쓰인다.

심훈상록문화제를 좀 더 확장 심화하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 최치원과 심훈이 시문의 맥락으로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소설가 심훈은 박동혁과 채영신을 당진에서 낳아 키워 주었다. 이제 우리는 이근배 시인이 새로운 ‘깃발’로 대한민국을 노래하도록 당진시민이 앞장서야 한다. 그러면 현대제철과 한국도량형박물관도 축전의 과학 마당을 펼쳐 새로운 당진문화를 견인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당진이야말로 과문사철의 용광로가 되어 줄 우리 고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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