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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 지배 시작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의 지역역사 산책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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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전투에서 패배한 청국군은 공주에 있는 대장 섭사성을 찾아 떠났다. 청국 병사들은 공주로 남하하면서 내포지방을 경유하게 되는데 청국병사가 지나는 내포지방 전역에서는 약탈과 노략질이 이어졌다. 이렇게 공주에 모인 청국병사들은 천만다행으로 청주로 우회하여 지원군이 파병된 평양으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걸음이 늦거나 부상당한 청국병들은 낙오자가 되어 조선에 버려졌다. 이들 낙오병들은 어찌 되었을까? 일부는 청일전쟁 이후 동학농민군에 의탁하여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동학농민군에는 청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청국병사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일부는 조선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는데, 지금도 내포지방에는 청일전쟁에서 패한 후 귀환하지 못한 채 화교가 되어 살았던 청국병사 후손들이 살고 있다. 
청일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일본군에게서 절정을 이룬다. 이미 경복궁 담을 넘었던 경험이 있는 일본군은 아무런 거리낌 조차 없이 민가는 물론 관아까지 침범해서 분탕질을 쳤다. 청국군을 추격한다는 명분으로 일본군이 보여준 행패는 실로 가혹했던 것이다.

남의 나라 군대가 조선 땅에서 벌인 전쟁은 누가 이겨도 그 피해는 조선 민중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전쟁의 피해를 입고 일본군의 위용과 잔혹함을 목격하고도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침묵으로 외면하지 않았던 내포지방 민중의 역사적 위대성이 여기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평양전투를 비롯한 청일간의 전쟁은 일본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이제 일본의 조선지배는 기정사실화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침략의도를 폭로하고 맞서 싸울 세력은 조선에 아무도 없었다. 오직 동학농민군만이 조선을 강점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저지하기 위해 봉기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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