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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기자단과 함께 떠나는 ‘버그내 순례길’

당진시대l승인2017.10.13 21:44l(1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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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를 시작으로 신리성지까지의 버그내순례길을 탐방하기로 한 날 이래저래 날씨도 너무 좋아 마음이 더 들떴다.  지금은 도로가 잘 닦여 별 어려움 없이 걸었지만 포장도 안 된 도로와 운동화가 아닌 짚신을 신고, 죄인처럼 끌려 갈 때, ”그 분들은 어떤 심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걸었다. 처음에는 힘들 것 같아서 가기 싫었지만 다녀오니 많은 생각들을 하게 돼 소중한 시간이었다. 당진어린이기자단과 함께 버그내 순례길 탐방 함께 떠나보자. 

원당초 5학년 김도원

 

합덕시장과 합덕성당물고기이정표 따라 합덕시장으로
솔뫼성지를 나와 목적지인 합덕시장까지 도착하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뜨거운 햇볕 사이로 노랗게 물들어가는 감이 보였다. 이어진 길에 많은 것들이 있었다. 빨간 꽃 끝 부분을 입에 대니 단 맛이 났다. 처음엔 그랬다. 이정표를 따라 합덕 시장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인지 시장은 한적했다. 이 곳은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 교통의 요지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큰 시장이 만들어졌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이곳은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의 채팅방이 됐다. 천주교를 따르는 것이 들키면 박해를 받기 때문에 합덕시장에서 몰래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소식을 전하는 만남의 장소가 됐던 것이다.

붉은 벽돌의 아름다운 합덕성당
이정표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니 고딕양식의 쌍탑이 하늘을 향해 두 손을 올려 기도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합덕성당에 앞에서니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옛날에는 성당 바로 아래까지 합덕제의 물이 들어와서 경관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곳은 1890년 충청도에 세워진 최초의 본당이며,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후 천주교신앙이 가장 적극적으로 전파된 ‘내포교회’의 중심지여서 많은 순교자들이 나온 곳이기도 하다.

천주교를 위해 순교한 페랭신부
1921년 합덕에 온 페랭신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게 빼앗긴 땅을 사들여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한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페랭신부님은 성당을 지키려 남으셨다가 붙잡히셨고 대전형무소에서 순교했다. 이렇게 순교하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 합덕성당의 뒤편에 순교묘비가 있다. 백문필 필립보, 페랭신부의 묘비에는 “내 양을 위하여 내 생명을 버리노라”라고 새겨있어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계성초 5학년 성하린버그내 길에서의 첫 번째 만남 솔뫼성지내포지역이 천주교 중심이 된 이유

버그내 길이 자리 잡은 합덕에 천주교 유적지가 많은 이유 중 조선시대 가장 많은 간척사업이 이뤄진 곳이라는 것과 월경지(중심도시와 지리적으로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지역)라는 특징이 있다. 이런 이유로 차별의 대상이 됐다. 천주교의 ‘평등과 나눔’의 정신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으로 받아들여 빠르게 퍼져 나가 신앙공동체를 이루 수 있게 됐다.
 

김대건 신부 생가를 둘러보며
우리의 첫 번째 순례길의 시작은 솔뫼 성지다. '소나무가 많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솔뫼 성지는 우리나라의 최초의 신부가 탄생한 곳이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솔뫼성지의 중심인 생가에는 교황 방문 모습을 본 뜬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계성초 4학년 민세빈

 

버그내에서 만난 조선의 카타콤바 신리성지


 합덕의 넓은 평야를 지나 신리성지에 들어섰다. 가을의 푸른 하늘과 주변과 닮아 있는 잔디 밭, 언덕 위로 오른 건물과 성당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성당 사이로 손자선 토마스 성인의 생가이자 조선 5대 교구장이던 다블뤼 주교관과 순교미술관을 만s날 수 있다.

천주교의 씨앗을 키워낸 신리성지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이는 곳이지만 이곳은 천주교인들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깊숙이 안쪽으로 물길이 들어선 지형 때문에 새로운 서적과 문물들이 들어와 내포 지역은 일찍부터 천주교가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신리는 주민 모두가 신자인 국내에서 가장 큰 교우촌이 되었다. 또한 프랑스 신부들의 비밀 입국처가 되었던 까닭에 신리는 천주교 박해시절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죽음 앞에서도 지켜낸 신앙은 천주교 전파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곳은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신리성지 안 다블뤼 주교관
신리성지 안에는 초가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집은 조선 5대 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활동했던 곳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박해기 유일의 주교관이다. 집의 일부가 그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1845년 김대건신부와 함께 조선 땅을 밟은 후 1866년 순교하기까지 21년을 활동한 다블뤼주교가 머문 곳이다.

신리성지 안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미술관
비밀교회를 의미하듯 지하의 순교 미술관에는 13점의 순교기록화와 5점의 영정화가 전시 되어 있다. 김대건 신부의 서품식을 시작으로 박해시절의 신자들의 삶이 이어 그려져 있다.  순교미술관은 박해시절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숨어 기도하던 분들이 고난을 이겨내고 천국으로 오르는 모습을 담은 듯 보였다.                     
계성초 4학년 이다은


웃는 얼굴이 멋진 김동겸 신부님

신리성지 김동겸 신부님을 뵙고 관련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버그내 순례길의 ‘버그내’는 어떤 의미로 붙여졌나요?
A. ‘버그내’란 삽교천으로 흘러드는 물길 이름이면서, 조선말 천주교 신자들이 비밀리에 만나던 장소인 합덕장터의 옛 지명이다.

Q. 순례길 물고기 이정표는 어떤 뜻이 있나요?
A.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첫 글자에서 따온 단어이며, 그리스어로 같은 발음의 ‘익투스’는 ‘물고기’를 말한다. 박해시절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Q. 합덕 성당과 합덕 시장의 역할은 무엇 이었나요?
A. 합덕성당은 충남에서 최초로 생긴 곳이다. 원래 양촌 성당이었는데, 합덕으로 이전해 페랭 신부님께서 성당을 건축하시면서 특이하게 탑이 두 개인 성당(고딕양식)으로 지었다. 페랭신부님은 성당 주변에서 나오는 생산물들을 고르게 나눠 주는 역할과 더불어 후에 땅을 나누어 주어 생계유지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합덕시장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서 정보공유를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Q. 눈여겨봐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A. 솔뫼성지에서는 김대건 신부 생가와 합덕성당 순교자묘, 신리성지 다블뤼주교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무명순교자묘를 잊지 않고 찾기를 바란다.

Q. 순교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의 특징은?
A. 미술관의 전시물들은 순교 기록화다. 미술관에 있는 그림들은 화폐 화가로 유명한 이종상 화백이 그리신 그림들인데, 장지라는 종이에 붓으로 몇 번을 칠해서 그리는 기법을 사용해 세밀하게 실제크기로 그렸으며, 정확한 공증을 거친 작품들이다.


원당초 5학년 송승주 (사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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