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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의 지역역사 산책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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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선 동학농민군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나라를 강탈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에 나섰다. 일본의 의도는 너무나 뻔했지만 누구하나 이를 알아채지 못했고, 폭로하고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오직 동학농민군만이 일본의 침략에 맞서 쓰러져 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섰다. 동학교주 최시형이 전국의 동학 포접에 기포령을 내린 것은 1894년 9월18일이었다.

최시형의 기포령은 9월 25일 지금의 김천인 경상도 김산의 편보언과 전라도의 녹두장군 전봉준, 9월30일에는 박회인을 통해 내포지방에 전달됐다. 이렇게 기포하게 된 동학농민군의 ‘2차기포’는 1차기포가 전라도지방에서 탐관오리에 저항해 일어났던 봉기였던 것과 달리 나라를 강탈하려는 일본의 침략에 맞선 반외세 구국투쟁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최시형의 기포령에 따라 전국에서 기포한 동학농민군은 동학본부의 지휘 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내포지방의 동학농민군은 내포지방 각처에서 기포했다. 해서지방의 동학농민군도 소년장수 김창수(후일의 김구선생)가 앞장서 해주성을 점령하는 등 서북지방 일대를 호령했다. 전라도의 동학농민군은 녹두장군 전봉준이 전라도 일대를 돌며 군사를 모집했다.

최시형은 동학교단을 보은에서 청산으로 옮긴 뒤 동학농민군을 2대로 나누고 손병희를 통령에 임명하여 군사 지휘권을 부여했다. 손병희는 일대의 군사를 이끌고 논산으로 가서 전봉준이 이끄는 전라도지방 동학농민군을 기다려 합세했고, 일대의 군사는 청산에 남아 경상도의 동학농민군과 합세해 금강 줄기를 타고 공주로 진격했다. 한편 천안, 목천의 동학농민군은 공주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인 세성산에 주둔해 공주로 향하던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내포지방의 동학농민군은 내포지방을 석권하고 공주의 배후를 위협했다. 이런 동학농민군의 움직임을 볼 때 동학농민군의 1차 공격목표는 충청감영이 있던 공주였음이 분명하다. 공주를 사방에서 포위해 점령한 뒤 조선에서 일본군의 철수를 관철시키거나 한양으로 진격할 계획을 세우고 추진했던 군사행동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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