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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뛴다 22 (사)한국문인협회 당진지부 황영애 부지부회장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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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시인·문학회 활동 등 바쁜 일상
12월 첫 개인시집 발간 예정

 

(사)한국문인협회 당진지부 황영해 부지부회장은 처음 시를 쓰고자 마음 먹은 뒤 무작정 시를 찾아다녔다. 어느 순간 시는 그에게 다가갔고, 그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인 황영애는 한없이 여유로워 보이지만 정작 그는 ‘한 달만 쉬어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왔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밴 글쓰기
경북 안동 출신인 황영애 부지부회장은 항상 일기를 쓰던 엄마를 보면서 자랐다. 그도 자연스럽게 덩달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글이 삶에 주는 가치를 깨달았다. 덕분에 어렸을 부터 좋은 어휘 습관이 몸에 배어들었다.

학창시절 활동한 문예부에서 윤동주 시를 읽고 시인을 꿈꿨다. 또 웅변과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시 낭송이 가지는 매력을 찾았다. 이후 학예회 등이 열릴 때면 시낭송을 도맡곤 했다. 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의정부 회룡문화제에서 입상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월간시사문단 신인상 당선으로 당시 거주했던 의정부문학회에서 활동했다.

안동에서 당진으로
학원강사로 근무해 온 그는 평일에는 바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잠시라도 시간을 내 여행을 다녔다. 바쁜 일상이 계속되면서 여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진 그는 결국 학원강사를 그만두고 고향 안동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도산서원 옆에 그동안 꿈꾸던 집과 레스토랑 겸 카페를 손수 짓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여유를 갖기 힘들었다고.

“카페 이름이 ‘들꽃이 피는 언덕’이었어요. 시와 음악이 흐르는 곳이었죠. 시낭송과 음악을 할 수 있는 무대도 있었어요. 여유를 느끼기엔 정말 제격이었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바빠 정작 여유를 느낄 시간이 없었죠.”

더욱이 안동에 머물면서 남편의 건강이 악화됐다. 간 상태가 나빠져 결국 이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다다랐다고. 그때 갓 스무살을 넘긴 첫째 딸이 아빠에게 간 이식을 해주기로 했다. 그는 “수술을 마치고 나온 딸의 얼굴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며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다행히 수술 경과는 좋았다. 그의 가족들은 이후 동생(황영란 새서울캠퍼스 학원장)이 있는 당진으로 오게 됐다. 당진에 살면서 그는 경력을 살려 새서울캠퍼스학원에서 강사로 근무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올해의 당진 문학인 선정
한편 황 부지부회장은 당진문화재단이 주최한 ‘2017 당진 올해의 문학인 출판사업’에 선정됐다. 이 사업을 통해 그는 오는 12월 첫 개인시집을 앞두고 있다. 황 부지부회장은 “나의 아픈 손가락인 딸을 위해 시 한 편을 쓰고 싶다”며 “하지만 딸에 대한 시를 쓰려 하면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구나 그렇지만 그에게 가족은 더욱 애틋한 존재다. 한 때는 인생의 무게 때문에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들이 서로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그는 “아무래도 사회활동을 하다 보면 집을 비울 때가 많다”며 “그럴 때마다 가족들이 부담을 주지 않고 오히려 격려해주기 때문에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은 물론이고 직장생활, 사회활동 등을 하면서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어느 위치에서든 최선을 다한다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영애 부지부회장은
- 1965년 경북 안동 출신
- (사)한국문인협회 당진지부 부지부회장 겸 사무국장
- 새서울캠퍼스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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