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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수 당진사무기 신도리코(당진점) 대표
물난리 때문에 없어진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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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5년부터 복합기 렌탈 전문 및 수리업체인 당진사무기를 운영하고 있다.

요즘엔 고객들이 직접 기기를 사기보다는 대여해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직접 기기를 사다보면 기계와 소모품 구입을 비롯한 유지비 등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여해서 사용하는 것이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엔 체인점이 많다보니, 중앙본부가 사용하는 업체에서 일괄 구입한다. 그러다보니 지역업체는 어려움이 많이 느끼고 있다.

집중호우 때문에 1998년 이전에 찍은 사진이 없어졌다. 당시 사진 몇 장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해서 아들 돌 사진 등을 인화해봤는데, 역시나 복구가 되지 않았다. 그 때 이후 사진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있다. 여러 단체에서 활동한 만큼 내 컴퓨터에는 단체별 폴더가 여러 개다. 어떤 사진이 필요할지 몰라 순간순간 다양한 사진을 많이 찍어놓곤 한다.

첫 번째 사진은 강재구 공원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육군이었던 강재구 소령은 나의 당숙이다. 당숙은 1965년 10월 4일 파월을 앞두고 수류탄투척 훈련을 실시하던 중 이등병이 실수로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떨어뜨리자,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폭발하려는 수류탄 위를 덮쳤다. 그리곤 중대원 100여 명의 생명을 구하고 사망했다. 이에 당숙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해 당숙이 소속돼 있던 맹호부대 제1연대 3대대를 그의 이름을 따 ‘재구대대’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또한 당숙이 산화한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에는 강재구공원이 있어, 종종 가보곤 했다.

두 번째 사진은 일본 가라쓰로타리클럽과 자매클럽을 맺고 일본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가라쓰는 ‘당진’과 한문이 같은 지역으로 당진로타리클럽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이에 20여 명의 당진로타리클럽 회원들과 나는 일본을 방문했다. 당시 내가 회장으로 활동했을 때라,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2000년 당진로타리클럽에 가입해 2009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회장을 맡아 봉사해왔다. 나는 당진로타리클럽에서 봉사를 처음 해봤다. 이후 당진 로타리클럽의 회원으로 쭉 활동하며 보람을 많이 느꼈고, 당진로타리클럽에 대한 추억이 많다.

세 번째 사진은 로타리클럽 3620지구 내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신혼여행(리허니문)을 다녀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진지역 뿐만 아니라 3620지구 내 다문화가정을 선정해 약 100쌍이 함께 했다. 위 사진 속에서 노란색 자켓을 입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나로, 2014년과 2015년 지역대표로 활동했을 때다. 이때 참가한 다문화가족들이 정말 좋아했었다.

네 번째 사진은 결혼 25주년을 맞아 리마인드웨딩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결혼사진도 물난리 때 없어져, 2년 전 결혼 25주년을 기념하면서 두 아들과 함께 사진촬영을 했다. 난 용인 출신의 아내를 친구 소개로 만나 두 아들을 낳아 길렀다. 큰 아들은 미국에서 인턴생활을 하다, 현재는 잠깐 한국에 와있다. 올해 추석에는 큰 아들을 볼 겸 미국 뉴욕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막내 아들은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 강병수 대표는
·1957년 시곡리 출생
·송악초 졸업
·전 송악초 25대 총동문회장 역임
·당진로타리클럽 33대 회장 및 당진지역 대표 역임
·현 당진사무기 20여 년 운영
·현 당진1동주민자치위원회 총무기획분과 위원장
·현 당진이안 아파트 1동 동대표
·현 당진사무기 대표(읍내동 뚜레주르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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