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의 지역역사산책
3만 명에 이른 동학농민

김학로 시민기자l승인2017.11.11 17:55l(1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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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은 손병희가 이끄는 호중 동학농민군과 경천에서 만나 이인으로 이동하였다. 어느덧 동학농민군은 3만명에 이르렀다.

한편 척왜항전을 위해 공주로 향하는 동학농민군의 진영을 주시하던 경군과 일본군은 일차로 김복룡 대접주가 이끄는 세성산의 천안, 목천의 농민군을 습격하였다. 좌선봉 이규태는 보은, 회인을 거쳐 연기에 주둔하고 있던 우선봉 이두황에게 세성산으로 갈 것을 명령했다.

세성산 전투는 1894년 10월21일 새벽 6시부터 시작되었다. 날이 밝기도 전인 새벽 말에 재갈을 물린 채 세성산으로 접근한 이두황의 장위영군은 동학농민군을 급습하였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장위영군 앞에 제대로 훈련조차 받지 못한 동학농민군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세성산 전투가 끝난 후 동학농민군이 흘린 피가 얼마나 많았으며, 죽은 시체가 산처럼 쌓였던지 세성산은 시성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세성산 전투에서 승리한 이두황군은 잠시 공주에 머물다 승전목과 신례원 전투에서 승리하고 홍주성을 위협하고 있던 내포지방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내포로 향했다. 내포에는 일본군도 함께했다. 이두황이 이끈 장위영군은 해미성에 머물던 내포지방 동학농민군을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가야산 일락사를 넘어 급습했다.

해미성에서 패한 동학농민군은 속절없이 패하여 태안까지 내몰렸다. 장위영군도 공주가 위험하다는 급보를 받고 이동하였고, 그 자리를 야마무라의 후비보병 6연대 6중대가 대신하였다. 태안까지 밀려난 내포지방 동학농민군은 야마무라의 일본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하였다. 동학농민혁명에서의 끔찍한 살육은 대부분 태안에서의 이야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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