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의 지역역사산책 27마지막 ‘촛불’로 부활한 동학정신

당진시대l승인2017.12.04 10:04l(1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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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평에서 해산한 동학농민군 지도부는 각각 뿔뿔이 흩어져 후일을 기약하고 숨어들었다.

그러나 동학농민군 지도부는 재물에 눈먼 부하들의 밀고로 모두 붙잡혔다. 순창 피노리에서 붙잡힌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지도부는 곧바로 서울로 압송되어 처형되었고,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가장 강력하게 개혁과제를 수행했던 김개남은 원한에 사무친 유림들에 의해 현장에서 타살 당하였다. 또한 다수의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탄압을 피해 남도의 끝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최후까지 몰린 동학농민군을 일본군은 군함을 동원해서까지 진도 일대의 무인도를 모두 뒤져 동학농민군을 잔혹하게 학살하였다.

반면 호중의 동학농민군은 본대를 유지한 가운데 후퇴하여 남원을 거쳐 옥천 보은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비록 보은 북실전투에서 패해 해산했지만 최시형, 손병희를 비롯한 동학교단의 지도부는 안전하게 위기에서 벗어나 후일을 기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생을 도망살이를 하며 버틴 해월 최시형은 1898년 원주에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는데 최시형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판사는 다름아닌 조병갑이었다. 조병갑은 동학농민혁명의 원인을 제공했던 고부군수였다. 마지막으로 지금 동학농민혁명을 논해 본다. 동학농민혁명은 123년 전 벌어진 역사적 대 사건이었지만 결코 123년 전의 옛이야기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123년 전 동학군이 주장한 내용이 지금도 변함없이 주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양극화가 일상화된 오늘날 차별과 불평등이 심화되어 사실상의 신분제 부활에 다름 아니게 되었다.

나라의 운명을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123년 전 주장했던 보국안민은 123년이 지난 지금 ‘이게 나라냐!’는 외침으로 똑 같다. 보국안민과 ‘이게 나라냐!’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모든 국민을 편안하게 하자라는 말로 맥락이 같다. 2016~2017년 대한민국 국민들은 광화문과 전국에서 촛불을 들었다. 국민을 무시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한 무능한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촛불이었지만 그 내면에는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와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었다.

나라다운 나라를 세워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자는 동학정신의 부활이다. 그 결과 국민은 승리했고, 정권도 바뀌었다. 이제 헌법을 바꾸자고 요구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게재하고자 한다. 미천하고 초라하기만 했던 조선민중의 작은 외침이 대한민국 최고의 민회인 촛불로 부활한 결과이다. 역사는 이렇게 면면이 이어져 강물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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