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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읍 기지시리 김평자·김기원 부부
인생 풍파, 아내 때문에 견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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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송악읍 기지시리에서 나고 자랐다. 기지시리에서는 고조할아버지부터 6대가 살았다. 어릴 적 형편이 어려웠던 나는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여러 일을 했다. 그러다 친구인 최은범 당진축협 전 조합장의 도움으로 양돈을 시작했다. 나는 초가집에서 어미 돼지 2마리로 양돈을 시작했고, 이후 한우 70여 마리를 키우기도 했다.
옛날 사진을 보면서 옛 추억을 되새겨 보니 좋았을 때도, 힘들었을 때도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사진은 나와 아내의 결혼사진이다.
내 나이 26세, 아내 나이 22세에 결혼했다. 우린 서산에 위치한 평화예식장에서 식을 올렸다. 이때만 해도 다들 한복을 입었지만, 우리는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요즘의 웨딩드레스와는 디자인이 너무 다르다. 이때는 웨딩드레스에 어떤 무늬도 없었다.

지인의 소개로 서산시 인지면 출신의 아내를 만났다. 우리는 3년 간 연애한 뒤 결혼했다. 당시 비포장 도로였기에 기지시리에서 서산까지 가려면 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중간에서 만나거나, 서산에서 만남을 이어갔다.

함께 산지 50년이 되어가는 동안 풍파도 있었다. 나는 1999년에 대장암에 걸렸고, 2006년 암이 폐로 전이됐다. 두 번의 수술을 통해 현재는 완치됐지만 당시 너무 힘들어 항암치료를 포기할 생각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운동하면서 견디니 암을 이겨낼 수 있었다.

암 투병을 하면서 체중이 17kg이나 줄었다. 암 투병하는 동안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아내는 어떻게든 나를 살려보겠다며 내 수발을 들었고,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 때문에 아내도 척추협착증으로 허리수술을 했다.

두 번째 사진은 손자 돌 때 찍은 자녀들의 사진이다.
우리는 슬하에 1남3녀를 낳았다. (왼쪽·아래)큰 딸, 아들, 며느리, (왼쪽·위) 둘째 딸, 막내딸이다. 사진 속 가운데 있는 손자는 현재 17세로 서울에서 살고 있다. 또 옆에 외손녀도 17세로, 두 손주는 몇 개월 차이를 두고 태어났다. 자식 중 나와 가장 많이 닮은 아이는 큰 딸이다. 성격이 활발하다. 반면 아들은 아내를 닮아 차분하고 순하다.

세 번째 사진은 송악라이온스클럽에서 활동하면서, 공로패 받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송악라이온스클럽에서 1988년부터 20년 간 활동했다.

네 번째 사진은 당진축협 이사를 했을 때, 제주도로 선견지 견학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제주도 주상절리를 배경으로 호명길 이사, 김기원 당진축협 전 조합장, 유종덕 이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기원 전 조합장은 나와 이름이 같다.

마지막 사진은 양돈할 때 찍은 사진이다.
태어난 지 3일 된 돼지를 안고있다. 사진을 보니 돼지의 배꼽이 떨어지지도 않았을 때다. 겨울에는 날이 추우니, 큰 대야에 아기돼지를 넣어놓고 안방에서 키웠다. 자식만큼 애정을 갖고 예뻐했다.
 

>>김기원 씨는
·1945년 송악읍 기지시리 출생(현 73세)
·전 당진축협 이사(12년 간)
·전 송악라이온스클럽 회원(20년 간)
·전 당진시 양돈협회 이사(25년간)
·현 당진시 경주김씨 종진회 부회장
·현 송악읍소재지 종합정비사업 추진위원회 부위원장
·현 송악읍 기지시리 경로당 고문

>>김평자 씨는
·1949년 서산시 인지면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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