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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살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사는 이야기 82세 요양보호사 이상원 씨(신평면 초대2리)

교직생활부터 요양보호사까지
아픈 아내 돌보고자 자격증 취득
임아연l승인2018.01.02 11:29l(11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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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3모작이다. 교단에 섰던 40여 년 간의 공직생활, 그리고 은퇴 이후 공공근로와 아파트경비원으로 일하던 날들을 거쳐, 이제 요양보호사로 새로운 노년기를 맞고 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이상원(82·신평면 초대2리) 씨는 그래서 여전히 청춘이다.

 

아내 위해 요양보호사 공부

이 씨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건 아내 때문이다. 27살에 이웃동네에 살던 친지의 중매로 5살 어린 아내를 만나 50년 넘게 살았다. 아내는 그 세월동안 시부모를 봉양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자신의 일생을 다 바쳤다. 이제 자식들도 다 크고 편안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젊어서 고생해서 그런지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무릎에 퇴행성 관절염이 심해 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런 아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상원 씨는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죄책감까지 들었단다.

“아내는 자신의 몸이 부서져라 헌신적으로 가족들을 위해 살았어요. 내가 조금 더 관심 가졌더라면 이렇게 많이 아프지 않았을 텐데,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내를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를 준비하게 됐죠.”

그는 올해 초 지인의 병문안을 갔다가 요양보호사를 만났다. 정성스럽게 환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오로지 아내를 생각하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론과 실습 교육을 거쳐 시험을 봤는데, 단번에 합격했다. 요양보호사를 준비하는 40~50대 사이에서 충남 최고령 합격자였다.

 

“요양보호사 처우개선 해야”

이 씨는 “요양보호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100세 시대를 맞아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노년을 보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인생에도 각 시기에 맞게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요양보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고, 열악한 처우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요양보호사가 꼭 필요한 만큼 법적인 보호와 처우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내는 얼마 전 노인의료나눔재단의 도움으로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잘 마쳤다. 제대로 거동하지 못하던 아내의 곁을 이상원 씨가 지키면서 아내는 빠르게 회복했다. 어느 날 아내를 교회에 내려주고 돌아서던 찰나, 아내가 계단을 오르더니 “이제 걸을 수 있다”고 소리치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앞으로 요추수술이 남아 있어 이것 또한 무사히 끝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는 “수술비를 마련하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가족들이 서로 돕고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됐다”며 “퇴행성 관절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나누고,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 1모작, 40년 교직생활

한편 이 씨는 80대에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을 준비해 단번에 자격증을 취득했을 정도로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 하는 학생이었던 그는 신평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명문학교로 이름난 서울 경복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을 했다. 그러나 곧 6.25 전쟁이 일어났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 다시 학업을 이어가기 시작하며 대전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성균관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교직생활을 하면서 단국대 교육행정학 석사를 취득했다.

1965년 당시 송악국민학교(현재 송악초등학교)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그는 20년 전 당진중학교 교감을 끝으로 명예퇴직했다. 윤리과목을 담당하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온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

합덕중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담당하던 학급반장이 자전거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적이 있었다. 사경을 헤매던 학생을 발견한 그는 즉각 응급처치를 실시하고 천안에서, 서울까지 백방으로 뛰며 학생을 큰 병원으로 이송했다. 다행히 학생을 살릴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매번 명절 때마다 그에게 과일 등을 보내며 인사를 빼놓지 않는단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40여 년을 일한 뒤 퇴직한 그는 당진시 공공근로와 아파트 경비원 일을 하면서 인생 2모작을 살았고, 지금은 합덕읍 운산리 프란치스코노인복지센터 소속 요양보호사로 인생 3모작을 가꾸고 있다.

“아내를 위해 요양보호사를 공부했고, 아내를 위해 일했지만, 앞으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사람들에게 제가 가진 건강정보와 지식을 나누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특히 아내와 인생의 동반자로 백년해로 하는 게 마지막 소원이에요.”

>> 이상원 씨는
- 1937년 신평면 초대2리 출생
- 신평초 25회 졸업
- 경복중·대전고 졸업
- 성균관대 교육학 전공
- 단국대 교육행정학 석사
- 당진중 교감으로 명예퇴직
- 합덕읍 운산리 프란치스코노인복지센터
  소속 요양보호사
 


임아연  zelkova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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