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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가난…따뜻한 밥 한 끼가 그립다
[사랑을 나눠주세요] 송악읍 가학리 박광석 씨

건강 악화에 번번이 실패…고물 주워 생계 유지
오는 3월 집 비워야 “어디로 가야 할 지 막막”
한수미l승인2018.01.24 17:49l(1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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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과 두유, 그리고 온기가 남아 있는 전기장판 위를 손님에게 내주었다. 귤과 두유는 주식이라 했다. 주식을 주면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이젠 물리기도 하고 덜 먹으면 된다며 웃었다. 분명 집 안인데 입김이 나왔다. 외풍으로 인한 추위로 손이 금새 뻣뻣해졌다. 박광석(송악읍 가학리·58) 씨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밤새 추위에 떨어 몸이 굳는다. 식사는 아침엔 컵라면, 점심엔 굶는다. 일을 하고 배가 고파질 무렵 이른 저녁밥을 먹는다. 그날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백반이라도 먹지만 그런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컵라면과 막걸리로 끼니를 때우고 잠을 청한다. 하지만 오는 3월이면 이 집마저 떠나야 한다.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다.

냉기 흐르는 집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빈 컵라면 용기부터 시작해 박카스 병까지 가득했다. 도저히 집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다. 한 사람 겨우 누울 수 있는 방에는 TV와 전기장판을 깔아 놓은 침대가 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온기가 있는 곳이다. 이불 속에 들어가서 잠을 청해도 아침이 되면 추위로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곳곳에 천장은 주저앉았고 벽에는 곰팡이가 슬었다. 문과 창문은 흔적을 알 수 없이 망가졌다. 비가 오면 물이 샜고 눈이 오면 집이 무너질까 전전긍긍하며 잠을 설쳤다. 얼마나 환경이 열악한지 잠 잘 때 쥐가 박 씨의 코를 긁고 있을 정도였다.

빵 한 쪽 나눠 먹던 시절
전남 나주 출신인 박 씨의 아버지는 사찰을 짓던 목수였다. 일이 있을 땐 한 달 넘게 집을 비웠고, 어머니와 여덟 남매가 집을 지키며 살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현장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초등학교 졸업도 못한 박 씨는 인쇄 기술을 갖고 있는 형을 따라 가족과 함께 서울 영등포로 이사를 갔지만 궁핍한 생활은 이어졌다. 빵 한 쪽이 있으면 형님에게 반 쪽을 주고 나머지 반 쪽을 가족들이 나눠 먹었다. 쌀이 있을 땐 겨우 밥을 해먹고 눌러 붙은 밥으로 누룽지 끓여 끼니를 해결했다. 박 씨는 “아버지가 계실 땐 소금을 반찬으로 삼아 밥이라도 먹었다”며 “하지만 서울에서는 굶는 날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하체가 왜소해 일 오래 못해
박 씨는 손재주가 좋았다. 나주에서 배운 나전칠기 작업을 서울에서도 시작했고 15살 때부터 32살까지 일을 했다. 하지만 성장기 때 하루종일 앉아 일을 한 것이 문제가 돼 하체 발달이 더뎠다. 이후 일을 그만두고 공사장 등을 전전했지만 하체가 약한 탓에 오래 일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0여 년 전 매형이 살고 있던 당진에 어머니와 함께 내려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일도 번번이 실패하기만 했다. 그러다 한 때는 1년 간 술에 빠져 살았다. 그는 “너무 힘이 들어 술을 마시고 자고, 또 일어나 술을 마시고 그렇게 살다가 호되게 아팠다”며 “그 이후 6개월 간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그때처럼 술을 마시면서 살고 있진 않다”고 덧붙였다.

고물 주워 팔아 생계 이어가
종종 다른 사람의 밭일을 돕던 어머니가 언덕에서 넘어진 후 골다공증과 뇌경색으로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혼자 남은 그는 고물 줍는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배낭을 메고 다니며 떨어진 고철을 주웠다. 그러다 자전거에서, 지인이 준 오토바이에서, 또 오토바이에 딸린 삼발이를 구입해서 고물을 주워 팔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다. 그러던 중  우사 해체작업을 하다 우사의 주인이 중고차를 줘 지금은 그 차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고맙단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오는 3월 집 비워야
먹는 것도, 사는 것도, 버는 것도 모든 것이 녹록치 않은 삶이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경 그는 집주인으로부터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겨울이 닥쳤기에 오는 3월로 미뤘지만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어 박 씨는 막막하기만 하다. 그는 “연탄불을 피워 놓고 죽을까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매일을 혼자 살아가는 그에게 외로움의 무게는 버겁기만 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밥 한끼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젊었을 땐 무슨 일이라도 해서 살겠다는 의욕이 있었는데 이제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수미  d911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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