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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인생, 감사하며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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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면 진관2리 토박이인 나는 군 제대 후 1964년 3월1일 정식 교사로 채용돼, 고산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당진지역 다수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2002년 퇴임했으니, 약 40년 교사 생활을 한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교직생활을 하게 됐고, 현재 둘째아들 역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한편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소속된 모임이 많아 그동안 찍어놓은 사진이 많다. 옛날사진을 찾느라 집안 곳곳을 들여다봤다. 다행히 아내가 옛날에 찍은 사진을 사진첩에 잘 정리해 놓았다.
나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모두에게 감사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봉사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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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1969년 아버지 회갑날, 8남매가 모여 찍은 기념사진이다.
나는 1969년 12월1일 결혼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2일은 아버지(손낙성)의 회갑날이었다. 그래서 결혼식 피로연과 아버지 회갑잔치를 같이 진행했다. 나는 2남6녀 중 다섯 째로 태어난 4대 장손이다. 현재 나는 당진, 서산, 예산, 경기도 부천을 아우르는 밀양손씨 명천공파 회장을 맡고 있다.
8남매 중 장남이라고 하면, 사랑을 많이 받았을 것 같지만, 아버지가 당시 장남이라고 더 엄하게 키우셨다.

두 번째 사진은 1972년 큰 아들 광열이를 안고 옛날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당진읍내 출신의 아내(김준옥)를 중매로 만났다. 아내는 나보다 8살 어리며, 진달래회 등 사회단체에서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성격이 쾌활한 아내는 발지압부터 피부관리사, 웃음치료사, 요양보호사 등 다양한 종류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는 식품관리에 관한 교육을 받으러 다닌다. 나와 아내는 슬하에 삼형제를 낳아 길렀다. 사진 속 큰 아들 광열이는 현재 경기도 동탄에서 살고 있다.

세 번째 사진은 1993년 1월 29일 둘째아들 창열이 생일에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아내, 둘째아들 창열이, 막내아들 대열이, 첫째아들 광열이, 그리고 나다. 이날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촛불을 불었다. 둘째아들 창열이는 세종시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얼굴과 성격, 직업까지 나를 많이 닮았다. 막내아들 대열이는 현재 동부제철에서 근무하고 있다.

네 번째 사진은 1998년 당진 시내에 위치한 웨딩의전당 가원에서 큰 아들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다. 웨딩의전당 가원 대표의 배려로 우리 부부도 전통혼례복을 입고 기념촬영을 했다. 약 30년 전 당진성당에서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던 기억이 났다.

마지막 사진은 1999년 지역 내 교장 부부들과 함께 금강산으로 놀러가 찍은 사진이다.
이날 파나마 선적 금강호를 타고 동해를 거쳐 금강산을 관광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때 일이다. 6월에 방문했는데, 북한사람들이 집단농장에서 모를 심고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굉장히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는 트랙터나 경운기로 농사를 짓는데, 북한에서는 그때 당시에도 직접 손으로 농사를 짓더라. 그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손흥동 회장은
·1940년 고대면 진관2리 출생    ·당진상고, 서울 문리사범대 졸업
·전대초, 삼봉초 전 교장             ·충청남도당진군교육지원청 전 행정자문위원
·현 당진시그라운드골프협회장  ·충남도그라운드골프협회 부회장
·당진시교육삼락회 수석부회장  ·밀양손씨 명천공파 종친회장
·당진향교 재무감사                    ·고대면 삼선산악회 회장   ·고대노인대학 부학장
·고대면 진관2리 노인회장          ·고대면 진관2리 당미경로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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