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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서 울려퍼진 “대한독립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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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

1919년 3월 10일 면천면 일원에서 보통학교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로부터 99년이 지나 3.10학생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며 지난 12일 역시 구 면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독립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회장 조이행, 이하 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번 재현식에 앞서 면천농협 농악단이 농악을 선보였으며, 이어 3.10만세 장학금 수여식이 이뤄졌다. 또한 오수권 사무국장이 약사 및 경과를 보고했으며, 3.10학생독립운동 노래 제창과 만세삼창이 진행됐다.

2부에서는 구 면천초를 시작으로 정류소에서 일제의 탄압을 재현했으며 면천농협 주유소 사거리를 지나 3.10 기념공원에 위치한 기념탑에서 헌화를 분양했다.

조이행 기념사업회장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며 “3.10만세운동은 후손들에게 숭고한 정신을 계상 발전시키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숭고한 독립정신을 결코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나라사랑 정신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3.10학생독립만세운동은?
면천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원용은은 서울에 갔다가 3.1운동에서 남녀 학생들이 선두가 돼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는 광경을 보고 벅찬 가슴을 안고 귀향해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다짐했다.
전교생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논의하고 제반행사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이들은 일본국경일인 3월 10일, 산 너머 으슥한 골짜기에서 전교생이 집합했고 독립만세운동을 대서특필한 10척의 장폭 현수막과 태극기를 길게 달고 나갔다.
3월 10일 독립만세운동을 대서특필한 10척의 장폭 현수막과 태극기를 길게 달고 나선 학생들은 면천공립보통학교 정문 앞에까지 당도했지만 경찰이 출동해 강력히 저지하는 바람에 해산했다.
그 후 공주 헌병대에서 16세의 원용은과 18세의 박창신을 주모자로 색출해 공주 형무소로 이감됐으며, 4개월 간 수감됐다가 석방됐다. 이후 원용은과 박창신은 면천공립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해 졸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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