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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만에 찾은 남매…“내 아들아! 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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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입양…신합덕성당에서 눈물 속 상봉
주민들과 경찰, 교민사회까지 발 벗고 나서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삶도, 그리고 아이들도…. 어딘가에 아이들이 살아 있을 거라는 아주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죽고 싶어도 차마 죽을 수 없었다. 살을 저미는 것 같은 고통 속에 37년을 살았다. 아이들을 잃어버린 뒤 단 한 번도 사람처럼 살아본 적이 없었다.

37년 만에 잃어버린 아이들을 다시 만난 사연이 연일 화제다. 우강면 창리에 살고 있는 김원제(76)·윤복순(69) 씨의 이야기다. 7살, 10살짜리 어린 아이들이 중년이 돼서 나타났다. 그 사이 아이들은 우리말을 잊었다. 37년의 긴 세월 앞에 언어의 장벽이 가로 막고 있었지만 서로를 마주한 순간, 펑펑 쏟아낸 눈물과 함께 마음의 응어리들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지난 날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야만 하는 부모자식은 물론이고 상봉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도 하염없이 울었다.

“1년만 돈 벌어 올게”

합덕읍 창정리 출신인 윤복순 씨는 아산 영인면 출신인 김원제 씨를 만나 22살에 결혼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아이를 낳은 기쁨도 느낄 새 없이 생계에 뛰어들어야 했다. 큰 아들 영훈(47)이 10살, 영순(44)이 7살 되던 해, 부부는 딱 1년만 서울에서 돈을 벌어 오겠다며 아산 시부모 댁에 아이들을 맡기고 무거운 마음으로 고향을 떠났다.

그 사이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차례로 돌아가셨다. 남매는 한 마을에 살던 삼촌이  키우다가 아이들을 서울로 데려다주던 길에 잃어버렸다. 삼촌은 미안한 마음에 이러한 사실을 부모에게 바로 알리지 못했다. 김원제 씨와 윤복순 씨는 남매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1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미친 사람처럼 아이들을 찾아다녔지만 행방을 알 길이 전혀 없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줄은 생각도 못했다. 윤복순 씨는 “아이가 아프면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나을 정도인데, 아이를 잃은 부모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느냐”며 “넋이 나간 상태로 죄인처럼 평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부부는 아이를 잃어버린 죄책감에 또 다시 아이를 낳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슬픔 속에 살아왔다.

“촘촘히 얽힌 인연으로”

그러던 지난 2012년 윤 씨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이들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런데 지나가던 한 사람이 “경찰에 신고해 보라”고 말했다. 이미 아이들을 잃어버린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이들을 포기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부부는 그 길로 경찰을 찾아갔다.

지난해 7월부터 장기실종전담팀을 운영하고 있는 충남경찰청 장덕환 경사와 박상복 여성청소년수사계장이 이 사건에 뛰어들었다. 책가방을 멘 아들 사진 한 장 뿐, 남아 있는 정보가 전혀 없던 상태에서 장 경사는 친인척과 인근 학교 등을 탐문해 생일과 이름이 같은 200여 명의 ‘김영훈’을 추적했다. 해외입양 가능성도 열어 놓고 조사를 벌이던 중 남매가 1982년 프랑스로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프랑스 한인교회와 교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인교회 신금섭 목사를 비롯한 교민들도 입양 남매의 소식을 수소문하다, 지난해 11월 결국 남매의 행방을 찾아냈다.

김원제·윤복순 씨 부부를 지척에서 바라본 주민 김귀자 씨는 “정말 기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촘촘한 그물처럼 얽혀 끝내 아이들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남매는 부모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37년을 살아왔다. 장덕환 경사와 김원제·윤복순 부부는 남매를 설득하기 위해 양부모에 편지를 쓰고 신금섭 목사에게 부탁하는 등 수 개월에 걸쳐 남매를 설득했다. 그리고 결국 지난 5일 신합덕성당에서 가족은 37년 만에 상봉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날 아이들을 보자마자 김원제·윤복순 씨는 “사랑한다. 미안하다”며 눈물을 터뜨렸다. 윤 씨는 “아이들을 버린 게 아니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 자식 찾듯 발 벗고 나서준 장덕환 경사와 박상복 계장, 신금섭 목사, 친언니처럼 챙겨 준 김귀자 씨, 친구 임옥순, 그리고 김계완 씨 부부, 미사를 미루면서까지 상봉 장소를 제공해준 김문수 주임신부와 기도로 함께 해준 수녀 및 신자들, 한마음 한뜻으로 축하해준 유성남 우강면장과 문수일 창1리 이장, 온누리아파트 경비아저씨를 비롯한 주민들까지, 고마운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한편 프랑스로 입양된 아이들은 다행히 좋은 양부모를 만나 건실하게 자랐다. 아들 영훈 씨는 양부모의 가업을 이어 빵집을 운영하고 있고, 딸 영순 씨 또한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 남매는 일주일 간 한국에서 지내며 어렸을 때 살았던 고향과 학교, 그리고 조부모의 산소를 방문했다. 그리고 조만간 김원제·윤복순 씨를 프랑스로 초대할 계획이다.
김원제 씨는 “아이들을 잘 키워준 양부모님께 정말 감사하다”며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을 회복해 아이들이 살아온 프랑스에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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