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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8.05.11 22:33
  • 호수 1207

30년 만에 지킨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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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동 당진시 토지관리과 지적관리팀장

5월은 일 년 중 행사가 가장 많은 달이다. 개인적인 행사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단체나 학교의 체육행사도 주로 이달에 치러진다. 특히,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은 대표적인 날로 스승의 날은 교권 존중과 스승 공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여 교원의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지정됐다. 그 역사를 보면 1963년 5월 26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지만 1965년부터는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변경하여 각 학교 및 교직원 단체가 주관이 되어 행사를 실시해 왔다.

그래서인지 이맘때면 누구나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선생님 한 두 분은 떠오를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그 선생님은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다, 나의 모교인 송산중학교에 1983년경 국어선생님으로 발령받아 오셨던 순성면 봉소리 출신 이건영 선생님이다. 첫 인상은 작은 키였지만 호남형에 매우 당당하신 기풍이 풍기셨다. 당시 30대 초반임에도 동네 한학하신 분을 찾아가 방과 후에 같이 공부하고 붓글씨에도 조예가 깊어 상당한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쪽 같은 성품에 원칙을 중시하시고 국어시간 시작 전에 항상 고사성어 두 가지씩 알려주시고 수업을 시작하셨다. 지금 내가 아는 한자나 고사성어도 그 때가 밑천인 듯하다.

그 뒤 선생님께서는 대전으로 전근을 가시고 대전 소재 중학교에서 교감선생님으로 퇴임을 하셨다고 소문을 들었으나 근 30년가량 뵙지를 못하였다. 그런데 지난 2013년에 선생님을 뜻밖에 송산중학교 교정에서 뵙게 되었다. 당시 모교체육대회 기간 중에 집행부가 선생님을 초청한 것이다. 감동은 그때 부터였다.

선생님께서는 일반 노트보다 조금 두꺼운 책을 100여 권 가져오셨는데 그 글머리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진군(시) 송산면 일원의 자연 지명 조사는 1983년 2학년 학생들에게 방학 숙제로 냈던 것이다. …중략… 지금은 컴퓨터가 일반화되어 책을 내기가 보다 수월해졌지만 아무튼 그 원고들은 누런 봉투에 담겨 내 책꽂이에서 30여 년의 긴 낮잠을 자야했다. 그것은 다 나의 무상함 때문인데 언젠가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그 지명조사서들이 들어있는 누런 봉투를 발견했다. 나는 오랜 친구 아니 첫사랑을 만난 기분으로 그 원고를 꺼내어 살펴보고는 당시의 해맑던 제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아련한 추억에 젖기도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연락이 닿는 대로 그 때의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어겠다고. …중략…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있던 동네가 없어지기도 하는게 다반사인 요즘에 30여 년 전에 그 동네에 살던 학생들이 직접 조사한 자연 지명이니, 이제는 사료적 가치도 있다고 본다. 아무튼 제자들과의 30년 전 약속을 지키려는 나의 조그만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이책을 보는 이들도 나처럼 기쁘고 또 향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추억에 젖어보길 바라마지 않는다.’」

선생님은 이 책의 주인공들인 송산중학교 2회 졸업생들의 만남을 축하하며 직접 지으신 “우리 서로 등대가 되어”라는 자작시까지 실어주셨다. 우리는 책을 받아들고 가슴이 먹먹했다. 선생님께서는 30년 전에 제자의 숙제를 버리지 않고 간직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 우리에게 나눠주셨다. 30년이 지난 뒤에도 그 약속을 져 버리지 않고 지키신 것이다. 2학년 1반 19번 내 이름도 또렷이 있었다. 그런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을 제자가 어디 있을까? 

최근 뉴스를 보면 교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사제 관계가 스승에 대한 존경과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사제 관계에서 인내와 포용을 통해 해결해왔던 문제들이 신고와 제도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서 문제가 발생하면 학생과 학부모들이 담당 교사를 믿고 따르기보다는 외부 기관이나 교내의 각종 위원회에 신고를 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해진 것도 교권 추락의 원인이다. 추락된 교권 회복을 위해서는 학생이나 교사의 인권 모두 존중을 받아야 하며, 교육 주체들 간 권리와 균형을 찾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주는 학창시절로 돌아가 학교를 찾아가보는 것도 젊게 사는 방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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