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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8.05.11 22:36
  • 호수 1207

[문화칼럼] 4월의 어느 멋진 날
-당진문화원 향토문화유적 탐방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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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당진수필작가회 회원

부침개 냄새가 잔뜩 밴 채로 당진문예의전당을 향해 뛰었다. 딸내미 점심까지 만들어 놓고 나오려고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건만 시간이 넉넉하질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버스에 올랐을 땐 이미 많은 분들이 앉아 계셨다. 남편과 아이를 뒤로 하고 혼자 놀러가는 첫 당일여행, 문화원에서 주관한 향토문학 탐방여행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평택에서 안산으로 그리고 다시 당진으로 돌아오는 일정 속엔 아픈 역사도 기억하자는 다크 투어와 소설 <상록수>를 중심으로 한 문학기행이 섞여 있었다. ‘박동혁’이란 동명이인을 매개로 두 가지 탐방을 하나의 틀로 엮어냈다는 기획자의 말은 신선했다. 천안함 사건으로 고인이 된 박동혁 병장과 소설 <상록수>의 등장인물인 박동혁이 같은 이름이라는 것에서 착안한 연결고리, 일명 ‘박동혁 찾기’였다.

첫 행선지는 평택에 있는 천안함 안보 공원이었다. 천안함 사건(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피격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었다. 인솔자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천안함의 잘린 몸뚱이를 올려다보았다. 2010년 3월, 내가 서툰 육아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때 군인 부모들은 다 키운 자식을 잃었구나. 천암함에 승선했던 군인들 몇몇 이름 앞에 붙은 ‘故’자가 얼마나 큰 절망이었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고인 중에 박동혁 병장이 있었다. <상록수>에서 채영신과 사랑하는 사이였던 박동혁처럼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기념관을 나왔다.

전쟁 통에도 밥은 먹어야 했겠지. 숙연해진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뜨끈한 갈비탕 국물에 금새 마음을 뺏겨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는 작은 사연에 불과한 게지. 이토록 잊는 것에 후한 나 같은 사람 때문에 기념관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 보다.

다음 목적지는 안산 상록수 공원에 있는 최용신 기념관이었다. 여유를 부리다 뒤늦게 들어간 기념관에서 영화 상록수를 시청했다. 1961년에 제작한 신상옥 감독의 흑백영화를 여주인공인 채영신을 중심으로 편집한 짤막한 영상이었다. 얼마 전 작고한 원로배우 최은희 씨가 채영신을 연기한 영화였다. 슬픈 장면이 많아 눈물을 참느라 눈을 얼마나 열심히 깜빡거렸는지 모른다. 스물여섯 해를 살다 간 최용신. 샘골 교습소의 모습으로 지어진 기념관에서 만나 공원 한켠에 자리한 선생의 무덤에서 헤어졌다.

뒤이어 우리는 성호 이익 기념관으로 향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상록수 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설을 그냥 지날 칠 수 없었던지 탐방일정에 슬며시 들어와 있던 기념관이었다. 30분이라는 시간을 빼곡하게 채워 이익에 관한 설명을 열심히 해 주시던 개량한복 차림의 해설사분이 인상적이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역사지식을 죄다 소환하느라 살짝 집중력이 흐트러졌던 게 미안했을 정도였다. 관람을 마치고 버스로 돌아가려다 아이처럼 색연필로 이익의 싸인을 본 떠봤다. 기념관 지하에 있는 체험전시실도 궁금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버스에 올랐다. 일찍 일어난 탓인지 자리에 앉자마자 졸리기 시작했다.

벌써 오후 5시. 주말이라 일정보다 늦어진 시간에 필경사에 도착했다. 나는 일전에 가족들과 한 차례 다녀갔던 곳이라 잠시 고민했다. 가는 곳마다 해설사들이 토해내는 정보를 주워 담느라 이미 뇌가 포화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단체로 몰려다니며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 했지만 마지막 일정만은 한적하게 필경사의 풍경을 눈에 담고 싶은 마음에 대열에서 벗어났다. 심각하게 좁은 진입로만 빼면 너무도 괜찮은 필경사다. 역시 봄이라 겨울에 만났던 필경사보다 포근했다.

저렴한 가격에 호사를 누린 것 같아 미안해지는 여행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저녁까지 함께 하는 일정이었으나 기다리는 가족들이 마음에 걸려 집으로 향했다. 너무 다 보고 오면 다음에 다시 가게 되지 않으니 아껴서 보고 오라던 남편의 우스갯소리에 그러고 왔노라고 허허대며 저녁을 먹었다. 나만 너무 즐거웠던 것이 미안해서 더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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