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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8.06.07 08:04
  • 호수 1204

[문화칼럼]시낭송 전통 창조
최명환 공주교대 명예교수, 한국진달래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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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짬새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본질 탐구에 빠져야 합니다. 본질이 뭔데요?
1960~1970년대 문단에 나와 지금까지도 시를 쓰는 시인이 있습니다. 반세기 넘게 시로 사는 시인이 많을수록 우리는 행복합니다. 죽은 시인의 살아 있는 시가 더 큰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1960년대 핫바지 입고 시피리 분다고 누가 춤추겠는가요? 처음엔 비록 댓잎소리 들었더라도 나이 들어 풀꽃의 생명력에 놀란 모습 아름답지 않던가요.
나는 어쩌다가 페이스북에서 어느 작가가 댓글에 댓글을 단 사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댓글 숲길 골이 깊었습니다. 줄타기 광대가 마당에 내려와 객석에 섞이는 순간 광대의 권위는 날아갑니다. 술, 담배에도 살아남는 소리꾼의 목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작가가 페이스북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의 얼은 멍들기 마련입니다. 댓글에 묻혀서 헛기침한다고 작품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는 시간을 더러 댓글에 쓴다고요? ‘젖은 신발’이 글길이고, 마른 장작이 잘 타지 않던가요? 어느 대학에서 국어학개론을 강의한 교수가 정년하고 야생화 찍으러 다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국어학은 정년까지만 연구할 대상이던가요? 대중을 상대로 강의 한마당 걸품지게 하는 국어학자 보셨는가요? 그런 시인은 있던가요? 누구처럼 제 자식 자랑하다가 망가질 것인가, 저속한 말로 바람이 될 것인가, 시의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여 품격의 언어로 문화의 경쟁력을 높일 것인가? 이런 주제로 고민해야 우리 시가 바벨탑의 언어를 무너뜨립니다. 시작품의 맥락을 통사적으로 꿰고 사는 나태주 시인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당진에서 시낭송하는 자리에 두 번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124회 시낭송회에서 보고 들은 국문학자의 목소리를 들려드립니다. 최소한 연간 계획을 세워 낭송의 품격을 높여야겠습니다. 문학사에 빛나는 작품을 읊고 계절과 시대정신을 반영해 합니다. 해마다 주제를 초점화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당진 시낭송의 전통을 창조해 나갈 일입니다.
​정월에 정지용과 눈길 걷다가 2월에는 만해와 나룻배를 타고 3월에 이상화와 심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리.
4월에는 소월과 신동엽을 만나 5월에는 영랑과 김수영의 손을 잡으면 6월에 목월과 청마에게 다가갈 수 있으리.
7월에는 육사와 청포도를 따먹고 8월에 김광섭을 찾아 성북동에 이르면 9월에 지훈과 이정록과 어울려도 좋으리.
10월 미당의 국화 꽃밭 거닐다가 11월에 백석과 나태주를 찾는 시낭송 회원님들이 어찌 12월에 이르러 〈별 헤는 밤〉을 빠뜨릴 수 있겠는지요.
어느 시낭송회는 4월에 낙화한 황금찬을 기념하고자 그의 시 세 편을 목록에 넣고, 복효근과 이해인 작품을 두 편씩이나 읊으려 했다니 성숙한 낭송 자세가 아닙니다. 시문학사를 공부해야 서정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고, 시와 시인을 사랑해야 나루에도 시꽃이 만발하지 않겠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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