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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18.06.22 23:08
  • 호수 1213

■탈북민과 함께하는 통일 토크콘서트
소통하며 허무는 분단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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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부터 남한 정착까지…평화·통일 이야기
당진시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센터 주관

▲ 당진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센터가 지난 19일 당진문화예술학교에서 ‘우리가 만들어 가는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통일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통일은 어른들이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청소년들도 ‘작은 통일’을 만들 수 있어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북한 아이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싶다는 마음으로, 북에서 온 또래 친구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도 통일이랍니다.”

당진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센터(센터장 문정숙)가 ‘우리가 만들어 가는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통일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지난 19일 당진문화예술학교에서 열린 이날 토크콘서트에서는 김은영 당진시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센터 교육부장이 사회를 맡았으며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 중인 정민우·정유나 씨와 뉴포커스 기자인 박주희 씨가 패널로 참석했다. 이날 콘서트는 통일에 관심 있는 원당중학교 학생들과 당진시민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세 명의 패널은 북한의 실상을 비롯해 청소년들이 통일에 앞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 및 태도 등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청소년들이 그동안 궁금해 했던 북한의 모습과 통일에 대해 질문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를 주관한 문정숙 당진시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센터장은 “평화와 통일에 대해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며 “우리 아이들이 탈북민을 이방인으로 보지 않고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당진시에는 106명의 북한이탈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토크콘서트 주요내용

통일이란?

박주희
“나누고 싶다는 생각만이라도”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으로 걸어올 때 TV 앞에서 울었고 회담 중계를 보며 통일을 생각하며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통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북에는 아직도 배가 고파 옥수수를 주워 먹는 아이들도 있다. 북쪽 아이들과 밥을 나눠 먹고 싶다는 생각만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정민우 
“기차 타고 유럽까지 가는 상상”

고향과 부모님을 생각하면 나도 슬프다. 나 또한 남·북 정상회담을 보며 감격스러웠다. 통일이 되면 좋은 점을 생각해봤다. 북한에는 자원이 많고 남한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자원에 기술을 더한다면 남과 북의 경제가 성장할 것이다. 또한 교통이 좋아져 열차로 유럽까지 갈 수 있다.

정유나 
“우리는 이사 온 사람일 뿐”

그동안 북한은 오로지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핵 개발에만 온 힘을 쏟았다. 북한의 아이들은 ‘김정일과 김정은을 위해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지만 몰래 한국 드라마도 보고 노래도 들으면서 남한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즉 살기 위해서 진심이 아닌 말을 하며 산다. 북한을 다른 나라라 생각 말고 내 나라로 봐 달라. 또 탈북자라고 꺼리지 말고 윗집에서 아랫집으로 이사 온 사람으로 봐줬으면 한다. 통일은 남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것이다.

어려웠던 남한 정착

김은영
“북한은 먼 나라가 아니에요”

고려대 법학과를 다녔는데, 대학에 가니 충청도며 부산이며 지방에서 많은 학생들이 올라왔다. 그 아이들도 서울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눅이 들어 있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먼 나라가 아니라 서울에서 오갈 수 있는 한 지역이다.

정유나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정착”

나는 북한에서 김정숙교원대를 다녔다. 졸업을 하면 교사로 근무할 수 있다. 근데 남한에 오니 학력을 인정받을 수 없었다. 취업할 때 학력 칸에 ‘김정숙교원대’라고 적으니 번번이 탈락했다.
속상함에 동네를 산택하다, 한 미용실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문구를 보고 들어갔다. 서울말을 따라 하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티가 났는지 원장이 어디서 왔냐고 묻더라. 그러면서 자신의 엄마도 실향민이라며 날 따뜻하게 받아줬다. 눈물이 났다. 원장님이 사비를 들여 미용학원과 미용아카데미에도 보내줬다. 나를 따뜻하게 대해 준 한국 사람들 덕분에 열등감이 사라지고 미용실장까지 됐다.

박주희
“차별하지 않아줘 고마워”

2013년 아들은 9살이었다. 처음엔 북한에 두고 왔다. 탈북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에 내가 먼저 온 다음 아들을 데리고 오려 했다. 아이가 10살일 때 탈북을 시도하다 압록강에서 잡혔다. 아이가 18일 간 감옥에 있었다. 그 소식을 듣고 자살하려고도 했다. 겨우 아들과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아이는 무서움에 탈북하지 않겠다고 했다. 난 미안하다는 말조차 못했다. 가슴이 미어졌지만 나는 아이를 데리고 오기 위해선 강하게 대해야 했다. 10살짜리 아들에게 “그럴 거면 오지마!”라며 화를 냈다. 두 번째 탈북을 시도했고 결국 성공했다. 아이가 남한에 오니 11살이었는데 글을 몰랐다. 북한에서 온 아이가 신기한지 반 학생들이 아이를 신기하게 쳐다봤단다. 적응을 하지 못한 아들을 어르고 달래며 학교를 보냈다. 그러다 체육시간에 아이가 달리기를 잘 해 학교에 소문이 나 인기가 많아졌다. 또 유명 축구단에 입단까지 하게 됐다. 이제는 집으로 친구들도 초대하곤 한다. 난 그 친구들에게,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감사하다. 우리 아이를 차별하지 않고 안아줬기 때문이다. 주변에 우리 아들과 같은 친구가 있다면 따뜻하게 보듬어 주길 바란다.

정민우
“탈북자 아닌 친구로 불러주세요”

남한에 오니 아무것도 몰랐다. 카톡도 몰랐고 왜 사람들이 ‘ㅋㅋㅋ’라고 하는지도 몰랐다.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가 굉장히 크다. 그때 옆에서 도와주면 너무 고맙다. 북에서 온 친구를 ‘탈북자’ 말고 ‘친구’로 불러줬으면 한다. 옆에 있다면 도와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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