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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8.07.03 13:16
  • 수정 2018.07.05 17:31
  • 호수 1214

[기고] 이종미 나루문학회 회장
잡초에게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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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힘을 다해 그 놈을 당기자 도마뱀 꼬리 자르 듯 몸뚱이 중간을 댕강 내준다. 생각치도 못한 녀석의 반격으로 그만 밭고랑을 넘으며 뒤로 쑤셔 박히는 꼴이 되었다. 초보 축에도 끼지 못하는 농부의 어설픈 손놀림을 그놈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장마 끝난 뒤라 그런지 녀석의 힘은 장사였다.

짓이겨 만들어진 풀내음이 달큰하게 온몸을 감싼다. 엄마 품속 같다. 그냥 쉬고 싶은 욕망위로 잡초의 호위무사인 모기들이 순식간에 달려든다. 신사적인 녀석은 귓바퀴에 대고 선전포고라도 하며 들어오지. 영화 속 장면처럼 비겁한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 곳, 내 손이 닿지 않는 취약지대를 공략한다. 그래도 그것은 낫다. 목덜미와 얼굴을 사정없이 물어뜯는 녀석도 있다. 이곳의 주인은 본래 자기들이라고 그렇게 주장한다.

철새가 감히 텃새를 건드린 격이다. 허공을 가르며 밭고랑으로 넘어간 뒤통수와 목덜미는 이미 아군이라 생각했던 고구마줄기에게 올무처럼 붙잡혔다. 허우적대는 팔과 다리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그냥 몸뚱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물건에 불과하다.

고통을 호소하며 난관을 헤치려고 노력하는 것은 오직 머리통뿐이다. 저 혼자 일어나 보겠다고 몇 차례 들썩거리다 그마저도 직립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움직임을 멈췄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것으로 보고 초록물결 너머에서 낄낄대며 웃던 지인이 달려와 일으켜 세워준다. 그대로 두었더라면 아마 모기 회식 날이었을 게다.

우리민족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농사를 지었고 예로부터 밝은 땅(배달)민족, 뿌리민족이라 불렸다. 나도 뿌리민족이어서 그런지 나이 쉰을 넘기면서부터는 푸른 들판을 보면 뛰어들고 싶고 푸성귀 냄새를 맡으면 고기 굽는 냄새보다 입맛을 당긴다. 공을 던지면 어느 정도 오르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땅에 떨어지듯 이제 나도 땅으로 향하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본능에 충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올 봄부터는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나는 텃밭에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 고구마라는 이름을 넣어 등기를 쳤다. 나의 모든 손놀림도 이들 위주로만 움직인다. 고랑마다 검은색 부직포를 깔고, 이랑마다 검정색 비닐을 덮은 후 구멍을 뚫어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를 심었다. 그랬더니 잡초 걱정할 일이 전혀 없어 좋았다.

지나친 관심은 무관심만 못하듯 지나친 비닐과 부직포 남발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장마 직전 비닐에 내리 꽂힌 땡볕에 신음소리 한마디 내뱉지 못하고 타 죽어 버렸다. 띄엄띄엄 몇 그루 남지 않은 것들도 그나마 장마와 태풍에 허리가 꺾여 이름값도 못할 듯싶다. 맑은 물에 고기가 없듯, 완벽한 잡초 차단은 차라리 방치 한 만 못한 결과를 낳았다.

고구마는 달랐다. 규격비닐보다 넓은 이랑을 어떻게 덮을까 고민만 하다가 그냥 줄기를 묻었는데 하나도 죽지 않고 잘도 자랐다. 아마도 흙과 잡초와 땡볕을 나눠 그렇게 잘 자랐지 싶다. 빨리 가려거든 혼자가고, 멀리가려거든 함께 가라는 명언은 이럴 때 쓰는가 보다.

부잣집에도 고민이 있듯 장마가 끝난 후 고구마 밭에도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명아주와 왕바랭이가 어느 틈에 그렇게 성장했는지 주객이 전도 되게 생겼다. 고구마 줄기를 심을 때만해도 그것들은 어린 고양이처럼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한 달 만에 깊고 넓게 박힌 뿌리는 어지간한 힘에도 꿈적 않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역시나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방법을 터득했다. 긴 줄기를 머리채 잡듯 틀어잡고 살살 흔들다가 있는 힘을 다해 잽싸게 낚아채는 것이다. 그렇게 몇 그루 뽑고 난 후 자신감이 붙어 내 키만 한 명아주를 뽑다가 그만 고랑에 쳐 박힌 것이다.

나는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철학이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란 잡초만 뽑고 너무 어리거나 내 밭의 주인공에게 해될 것 없는 거리에서 성장하는 녀석에게는 자비를 베풀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게으르거나 잡초와 익(益)초를 구별하지 못해 그냥 둔 것이 절대 아니다. 직장 일을 하다가도 자투리 시간이 나면 그들의 자람을 살피고 대결을 기다려왔다.

해 떨어지고 바람 시원한 날에는 그들이 을이고 내가 갑이라는 사실도 이미 선배 농부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과의 대결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여 미뤄뒀을 뿐이다. 장마를 기점으로 갑과 을이 바뀔 줄 누가 알았을까.

초보농부 잡초를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 잡초도 때로는 익(益)초의 생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쓸모 있음과 없음은 상황에 따라 지극히 주관점이라는 점. 잡초도 그런데 하물며 쓸모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또 어릴 때 모습이 아무리 예쁘고 귀여워도 내가 감당 못할 만큼 잔인하게 성장할 것 같은 놈은 애초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점. 그것이 어디 잡초뿐일까. 갈 길은 아직 멀지만 첫해의 경험으로 이만하면 초보농부에 입문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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