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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8.08.20 21:29
  • 호수 1220

문영미 문화예술창작소 내숭 대표
그림자 인형극을 함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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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충남문화재단의 2018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공모 요강을 보고 이 사업을 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었다. 왜냐하면 2017년도에 공모했다가 한 번 떨어진 경험이 있었던 터라 공모해도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무렵 동네 어르신께서 우리 같은 늙은이한테도 연극 가르쳐 주면 안 되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회춘유랑단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사업을 운영해본 단체들이 힘들어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농번기 출석률에 있었다. 농촌의 현실을 너무나 잘 아는 나 또한 어르신들의 출석률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어르신들의 출석률은 굉장히 높았다. 처음엔 내가 이 동네에 살고 있어서 그런가?

우리 부모님 때문에 그런가? 아니었다. 이유인즉 “소외지역에 사는 늙은이들한테 누가 이런 교육을 해주느냐, 누가 우리 같은 늙은이를 이렇게 웃게 해 주느냐, 먹을 것도 주고, 치매 예방도 되고, 생전 처음 해보는 것들인데 재밌다”고 하셨다. 그래서 화요일이 기다려지고 즐겁다고 하셨다.

어르신들은 자신을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셨다. 그 어떠한 혜택에서도 당연히 소외되어야 하는 계층, 칠십 평생을 농사밖에 모르고 땅과 함께 살아오신 분들, 시골 촌구석에 사는 늙은이들이기에 소외되는 게 당연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문화예술교육 그리고 연극을 만났다.

첫 수업부터 공연발표 일주일 전까지도 어르신들이 입에 달고 있던 말은 “난 못 혀”였다. 그럴 때마다 나와 강사진들은 ‘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답했고, 급기야 ‘난 못 혀’라고 말하면 벌금 1000원을 내기로 정했다. 그렇게 수업을 진행하면서 발표 날이 다가오자 어르신들 한 명 두 명 긴장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초등학생들과 연극놀이 수업을 함께하고 놀이 대결도 해야 했기에 밤잠을 설칠 정도로 긴장을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발표 날이 되어 학생들과 연극수업을 진행하는데 아이들보다 어르신들이 더 잘하시는 게 아닌가? 그 순간에 느껴지는 어르신들의 자존감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표정에서 느껴지는 자신감과 당당함, 여유로움까지 완전 기세 등등 그 자체였다.

회춘유랑단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 마을에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마을 밴드에 매주 수업 사진을 올려놓곤 했다. 그러다 보니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어떤 수업을 하는지 확인이 됐고, 멀리 떨어져 사는 자녀들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지곤 했다.

그러면서 자녀들과 한 번이라도 더 연락하게 되었고, 사진 속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이 프로그램이 어르신들에게 얼마나 유익한지 알 수 있다는 댓글, 함께 하고 싶다는 댓글들이 이어졌고, 밴들에 올라온 사진으로  ‘우리 동네는 이런 것도 해. 우리 동네 참 좋지? 부럽지? 우리 동네는 복 받은 동네여’라며 우리 동네 자랑을 하기 시작하셨다. 사실 이것까지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헌데 어르신들이 ‘정미면 산성리’라는 마을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계셨고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2016년 11월,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하겠다고 극단 당진을 떠나 홀로 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많이 힘들고 지치기도 했지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마을 어르신들께 조금이나마 삶에 위로가 되어 준 것 같아 그 무엇보다 기분이 참 좋다. 또한 어르신들의 밝아진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해야 할 일,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좀 더 명확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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