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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당진버스터미널 내 ‘카페 톤’ 운영하는 허지원 씨
“숨 넘어 가게 힘들어도 다 지나가요. 인생도 마라톤도”

삶의 탈출구로 시작한 마라톤…풀코스 완주 20회
발바닥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아
영어·중국어·도예·통기타까지 배움으로 준비하는 60대
임아연l승인2018.10.08 13:04l(12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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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0km 지점에 들어서면 숨이 넘어갈 것처럼 정말 힘들어요. 그땐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보면서,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얘기들을 혼잣말로 내뱉으며 계속 달리죠. 살아오면서 정말 힘들었던 순간들, 그 시간을 참고 버텨온 인생을 생각하면 어느 순간 또 힘이 생겨요. 그렇게 35km 지점을 지나면 다시 또 달릴만해져요. 인생도 비슷한 것 같아요. 죽을 것 같던 순간들도 꾹 참고 계속 달리다보면 살만해지는 때가 오더라고요.”

큰 교통사고에 사업실패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당진버스터미널. 당진에 도착한 사람의 설렘과 당진을 떠나는 사람의 아쉬움이 공존하는 이곳에 카페 톤(cafe Ton)이 자리하고 있다. 허지원 씨가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 속에는 12년 전 당진에 처음 왔던 당시에 느낀 삶의 쓴맛도, 그리고 어려움을 딛고 이겨내며 다시 살아 갈 수 있게 한 희망도 모두 담겨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주로 살았던 그는 큰 어려움 없이 유복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졸음운전으로 큰 교통사고를 냈고, 수차례에 걸친 봉합수술을 해야만 했다. 게다가 그 무렵 남편의 사업까지 실패했다. 자녀들의 학비를 제 때에 낸 적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엔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한꺼번에 겹쳐오는 시련들에 힘겨워하던 그는 지긋지긋한 불운으로부터 도망치듯 지난 2006년 언니가 살고 있던 당진에 왔다. 처음엔 1년 안에 떠나겠다는 생각이었다. 고민과 어려움을 이고 지고 이곳까지 왔는데,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 그 사이 당진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안겨줬다. 이제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삶의 끝에서 시작한 마라톤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했던 건 등산과 마라톤이었다. 극한의 육체적 고통을 느끼며 땀을 쏟으면 잠시마나 힘겨운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마라톤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늦은 밤이든, 이른 아침이든 그냥 틈나는 대로 달렸다. 밖을 나설 수 없을 땐 심지어 좁은 원룸 방에서 달리기를 연습했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마라톤을 시작한지 10년이 됐다. 동아마라톤, 손기정평화마라톤 등 각종 대회에서 42.195km의 마라톤 풀코스를 스무 번이나 완주했다. 오는 28일에는 춘천마라톤에 도전한다. 이번에 성공하면 10회 연속 풀코스를 완주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허지원 씨는 “마라톤을 시작하고 2009년 10월 처음 대회에 출전했을 때, 가슴 앞에 단 번호표 뒤에 기도문을 써서 붙이고 달렸다”며 “그만큼 삶이 절박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달려 처음 마라톤을 완주했을 땐 정말 코끝이 찡했다”고 회상했다.

어떤 날에는 면도칼로 발바닥을 찢는 것처럼 고통이 밀려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버린 지저분한 양말을 주워서 신고, 발바닥을 오그린 채로 고통을 참고 뛰었다.

“앞으로 삶이 기대되요”
힘겨운 시간들을 거쳐 오면서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지만 결국 힘겨운 삶을 버티며 이겨낸 것처럼, 마라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허지원 씨에게 마라톤은 결국 인생이다.

지금은 큰 고비들을 넘기고, 자녀들까지 잘 키워냈다. 삶의 활력이 생기면서 자기계발을 위한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카페를 운영하면서도 그는 신성대 관광중국어과를 졸업한 뒤, 한서대로 편입해 현재는 미디어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예와 통기타, 영어회화까지 틈틈이 배우면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라톤을 처음 시작했던 게 49살 때였어요. 인생의 최대 고비를 맞으면서 곧 50대가 온다고 생각하니까 앞이 너무 캄캄하더라고요. 지푸라기라도 부여잡는 심정으로 마라톤을 시작했고, 그렇게 50대를 잘 보낼 수 있었어요. 이제 60대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살 지, 제 앞에 펼쳐질 60대의 삶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공부하며,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앞으로 제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 삶이 작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임아연  zelkova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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