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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8.10.08 19:12
  • 호수 1226

[문화칼럼]황영애 (사)한국문인협회 당진지부 부지부회장
下愛有 上愛無 (하애유 상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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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숲

가지를 키워 나의 늑골이 자란
피와 살을 문장으로 엮은 은유의 숲
뼈마디로 줄기를 키웠던
아버지의 주름이 나이테로 남아
통점에서 문장이 익어간다
숲이 가슴을 열어 젖은 별을 품는다

당신,
푸르게 반짝이는
<아버지의 숲>이란 시를 써 놓고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얼마 전까지 덥고 습한 기운을 세차게 아래로 내려 보내던 그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마음까지 파랗게 물들 것 같은 하늘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올 한가위에는 밝은 달을 볼 수 있겠구나’ 연휴를 가늠해 보며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안동에 가기로 했다. 무논이 점차 마른 논이 되어 찰랑이는 벼이삭을 단 논둑길을 걸으며 낙동강 상류지역 너른 들을 보고 싶었다.

물이 사라진 논둑에는 뫼 꽃이 넝쿨을 꺼내고 한 여름 소리를 깨우던 매미도떠나고 없겠지. 만화방 창 꽃 피던 한낮도 차분한 숨을 쉬며 여유로운 중년의 얼굴로 길어진 산 그림자를 품어 줄 것이다. 나는 어슬렁거리는 구름 한 조각 잡아 친구해야겠다. 벼들이 햇살과 울력하며 여무는데 진력하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바빴던 일상을 고향 풍경에 풍덩 빠뜨리고 다시 일어서야지.

혼자서 만 가지 생각을 재워 놓고 있는데 혈당 관리로 병원에서 엊그제 퇴원한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올해는 부모님이 한가위를 쇠러 아들집으로 오신다는 전갈이었다. 아버지는 한평생 군대에서 쇠는 명절 외에는 고향을 떠나 쇠 본적이 없었다. 안동의 유교적 생활 관습으로 조상 모시기를 으뜸으로 여기는데 참으로 의외였다. 아픈 자식이 눈에 밟혀 마음을 못 놓고 계셨나보다.

‘下愛有 上愛無(하애유 상애무)’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오랜 관습으로 인한 명분보다 불혹이 넘은 다 큰 자식의 염려가 앞서는 것에 죄스러움이 컸다. 여동생이 안동으로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왔다. 올 여름 휴가 때 뵙고 처음이라 건강부터 살폈다.

한가위 전날 남동생 집에서 모여 저녁을 먹고 화기애애한 웃음꽃을 피웠다. 한가위 날 나는 며느리 입장이다 보니 동두천으로 시부모 성묘를 가야 한다. 그래서 저녁 때 다시 찾아뵙기로 하였다. 하향하는 서해대교가 어찌나 막히던지 차 안에서 7시간을 견뎠다. 저녁 늦게야 당진에 도착해서 남동생 집에 가니 석문방조제 음악분수 쇼를 보고 금방 들어오셨다고 한다.

그동안 여동생이 여러 곳을 모시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주었다. 항상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이 몸에 배인 여동생의 갸륵한 모습에 미안함이 앞섰다. 내일은 우리 집에 부모님을 모셔서 점심을 먹고 면천과 합덕으로 바람을 쐬러 가기로 하였다. 늦은 밤에 부모님이 좋아하는 반찬거리를 장만하며 올라가는 입꼬리에 잠을 담궜다.

아침 일찍 분주하게 청소를 하고 음식 준비를 하는데 올케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모님을 모시고 안동으로 가는 중인데 새벽에 길을 나서서 고향집에 거의 다 와간다고 하였다. 잘못 들은 것 같아 실랑이를 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가슴 무너지는 아픔이 쓰나미처럼 밀려 왔다.

“야야 너거들 모처럼 연휴에 편히 좀 쉬었다 일해야제. 손자 손녀들 학교도 가야 하고 출가도 시켜야 하는데 돈 들어 갈 때가 좀 많겠노. 너거 아부지랑 나랑 대접하느라 욕 봤다. 그만하면 됐다. 너거 형제들 우애 있게 지내는 모습 보이까네 아픈 곳이 싹 다 나서버렸다. 야야~ 우린 괜찮데이. 신경 쓰지 말고 걱정 말거래이. 너거 집 막내는 학생이라 너 올케한테 용돈 쪼매 맡겨 놨다. 애들 뒷바라지 잘하고 밥 잘 챙겨 먹고 힘내서 잘 살거래이. 인자 끊는다. 너거 아부지랑 가을걷이 하러 나갈란다.”

식은 국이 화르르 눈물을 흘린다. 빈손으로 보냈는데 이제부터 제게 치사랑을 점지하세요.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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