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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신평면 남산리 손영자 씨

생계 막막해 안 해 본 일 없던 젊은 날
하루하루 버거웠던 시간들이지만…
천자문 떼고 성경 쓰면서 배움에 눈 떠
“용광로가 금을 녹이듯 시련으로 단련되는 인생”
한수미l승인2018.10.27 13:15l(12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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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3일은 멀다 하고 토끼 같은 손자들이 할머니를 찾는다. 주말이면 부르지 않아도 아들 가족들이 찾아와 시끌벅적해지곤 한다. 다복하면서도 행복한 삶이다. 하지만 그 역시 삶과 죽음이라는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는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삽교천에 빠져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단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했던가.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특별한 것도, 대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제야 비로소 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단다.

생·사의 갈림길

신평면 남산리에서 살고 있는 손영자 씨(67)는 23세에 결혼했다. 남편과 시어머니, 시누이 둘과 함께 살았다. 아들 셋을 낳았지만 잠시도 쉴 수 없었다. 갖고 있던 재산도 하나 없었고 돈과는 거리가 멀었던 남편 대신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소매를 걷어야만 했다. 그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했다”고 말했다.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밭이며 논이며 몸 사릴 새 없이 뛰어 다녔다. 공장을 전전했을 때도 있었고 청소 일을 하거나 지인과 식당을 동업하기도 했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이 앞섰기에 집 벽이 곰팡이로 까맣게 물든 것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들 새도 없이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해야만 했다. 너무도 힘든 삶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는 “일단 오늘 바르게 살고, 내일 죽는다면 죽자”고 굳게 마음먹었단다.

▲ 30년 지기인 이명희 씨와 손영자 씨

“엄마 빚이 얼마야?”

“성경에 보면 ‘금은 뜨거운 용광로를 들어갔다 나와야 반짝이고, 인간은 뜨거운 시련을 겪어야 참인간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와 닿았어요. 시련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려고 마음먹으면,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세 아들을 대학까지 보냈을 무렵 막내아들이 물었다. 엄마 빚이 얼마냐고. 대학만 졸업하면 이 빚은 빚도 아니라며 엄마 손 씨를 위로했다. 정말로 아들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함께 생계를 책임졌다. 까맣게 슬었던 곰팡이 벽지가 아닌 하얗고 깨끗한 벽지가 발라졌으며 환한 햇살이 들어오는 넓은 거실도 생겼다. 또 5명의 손자까지 본 그는 이제는 누가 봐도 다복한 모습이다. 그는 “지금도 역시 돈 많지 않다”며 “그래도 매일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 매일 쓰는 한자와 성경

끊임없는 배움의 길

한편 손 씨는 끊임없이 배움의 길을 걷고 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배움을 그만둬야 했던 손 씨는 못 배운 한이 가슴 속 깊이 남았단다.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천자문을 펼쳤고 한 자씩 익혀갔다. 수년을 쓰고 읽으니 이제는 웬만한 한자는 읽을 수 있을 정도라고.

또한 시간을 쪼개가며 매일 같이 성경을 쓴다. 합덕읍 신리 출신으로 천주교 순교자의 후손이기도 한 그는 직접 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가 벽장 안에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년 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현재는 송악실버프리요양원에서 8년 간 근무하고 있다. 3교대로 일을 하면서도 새벽이며 저녁이며 항상 성경, 한자와 대화하는 그다.

“글을 쓸 때 행복해요. 지금도 한자 하나를 쓰고 혼자 해석하곤 해요. 늦엇지만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이 너무 즐겁습니다.”   


한수미  d911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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