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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8.12.02 02:41
  • 호수 1234

베트남(월남) 전적지 순례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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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 월남참전자회 당진시지회장

월남참전자회 당진지회에서 22명의 회원들이 자비를 모아 베트남 중부로 전적지 순례를 다녀왔다. 첫 번째 전적지로 도착한 베트남 다낭은 너무나도 깨끗하고 잘 지어져 있었다. 52년 전 전쟁이 일어났던 이곳은 과거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넓고 깨끗한 거리와 큰 건물, 도로는 4차선에 택시와 자가용, 버스가 많이 다녔다. 오토바이는 이전과 비교 했을 때 줄고 젊은 사람들은 예쁘고 멋진 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나라와도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당시 남자들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참전용사들 중에는 전쟁 중 싸우다 전사하고 고엽제와 병마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회원들은 그때의 청룡부대의 위치를 찾아 다낭을 방문했다. 하지만 실망이 컸다. 넓은 터에 오물만 쌓여있었으며 건물은 부서져 있거나 거의 없어졌다. 허탈한 마음에 차에서 내리니 어
느 한 남자가 부서진 벽들을 찍은 사진을 갖고와 보여주며 청룡부대 정문에 있던 문패라고
했다. 본인이 52년 동안 간직하고 있다며, 우리들을 보면서 좋아라 얼싸 안으며 인사를 하였
다. 그나마 52년 전에 토막난 명패라도 보니 감사할 뿐이었다.

우리들은 많은 한국군이 작전하여 생명을 잃은 앙케페스로 향했다. 높은 산을 30분 간 올랐
다. 전쟁 당시 이곳엔 길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오가는 관광객이 많았다. 그
러나 한국사람은 우리들 22명 뿐이었다. 한국사람은 왜 22명 뿐인가 알아보니 한국관광사에
서는 이곳을 오지 않고, 한국인 관광객이 오고자 해도 설명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이전에 베트남에서 싸운 병사들이 와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해 마다 방문한다고 한다. 나도 4년 전 중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낸 사진이 있어 이번 순례에 가지고 갔다. 아쉽게도 그곳은 나무가 우거져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또한 경찰군인이 이곳을 지키며 사진조차 못찍게 했다. 빨리 내려가라고 야단을 쳤다. 그래서 사진을 보여주며 이전에 이곳에 왔었으니, 사진만이라도 찍게 해달라고 애걸했다. 그제야 사진을 찍고 묵념을 할 수 있게 됐다.

“전우들이여, 고요히 잠들어 다오. 저 하늘나라에서라도 우리들을 반겨다오. 이곳에 50여년만에 너희들의 모습을 보러왔는데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구나. 이제 쓸쓸히 작별하며 우리들은 내려가마.”

버스에 몸을 싣고 산에서 내려 올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해마다 베트남에 전직순방을 해주던 지원사업이 2018년부터는 아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월남전 참전은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과 세계평화와 한국의 안보에 기여하는 한편 참전의 대가로 조국 근대화를 위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1964년 7월18일부터 1973년 3월 20일까지 8년 8개월 간 이뤄졌다.

당시 참전병은 32만4800명이었다. 참전 이후 지금까지 11만 명이 고엽제와 병마에 시달리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베트남 전적지 순례를 없앤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전국에 도·시·군
에서는 다 보내주고 있는데 당진시만 중지시킨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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