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편집 : 2024-03-18 11:40 (월)

본문영역

■아들과 함께 쌀 생산부터 판매까지…이남일 씨를 만나다(우강면 내경1리)
“우강쌀, 밥맛을 서울까지 그대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잠실에서 쌀카페 운영…젊은층·도시 소비자 공략
왕겨만 벗겨낸 현미 진공포장해 즉석 도정 판매

고래가 드나들었다는 바닷가 마을은 삽교호방조제가 건설된 이후 너른 우강평야로 변했다. 지평선 너머까지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이곳에서 40여 년간 농사를 지어온 이남일(62) 씨는 최근 아들 이승수(29) 씨와 함께 루다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도시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쌀 소비가 줄어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요즘, 우강에서 생산된 맛좋은 쌀은 서울 잠실에 위치한 제1호 도시방앗간에서 즉석 도정돼 소비자들의 식탁 위에 오른다. 이남일 씨가 우강에서 농사를 지어 쌀을 진공포장해 서울로 올려보내면, 잠실에서 쌀카페 ‘부농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아들이 즉석정미기로 그때그때 쌀을 도정해 판매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쌀이라도 도정을 해 놓으면 5월이 지나면서 급격히 밥맛이 떨어져요. 하지만 쌀을 진공포장해 놓았다가 소비자들이 원할 때 마다 도정하면 일년 내내 가을에 갓 수확한 햅쌀의 구수하고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원하는 품종, 입맛대로 도정해 판매
지난 10월 말 개업한 쌀카페 ‘부농방앗간’은 벌써 입소문을 타고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현미부터 도정 정도에 따라 5분도, 9분도, 그리고 백미까지 원하는 만큼 도정할 수 있어 인기다. 맛은 물론 영양까지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쌀의 도정 정도 뿐만 아니라 쌀 품종별로 판매하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쌀을 골라 먹을 수 있다. 이남일 씨는 농사짓는 각 필지마다 품종을 달리 심고, 가공 과정에서도 단일품종을 철저히 지킨다. 해나루쌀의 원료곡인 삼광은 몰론, 진상, 다미 등을 구분해서 관리하고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품종을 찾아 구입할 수 있으며, 마치 커피처럼 원하는 스타일로 블랜딩도 가능하다.

이남일 씨는 “최근 은은한 향이 있는 골든키라는 품종을 재배했다”며 “다른 품종과 적절히 섞어 밥을 하면 밥맛이 한층 더 좋다”고 말했다. 이어 “적절한 비율을 유지해 서로 다른 품종의 쌀을 블랜딩 하면 새로운 밥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시장에 접근하면서 농협에서 1kg당 3000원 정도에 판매되던 쌀을 아들은 쌀카페에서 1kg당 4200~49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들도 처음엔 다소 비싼 가격에 쌀 구입을 망설였지만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의 재방문이 많아지고, 입소문으로 계속해서 퍼져나가고 있다고. 이 씨는 “1인 가정을 비롯해 소규모 가정이 늘면서 과거처럼 20kg씩 대량으로 쌀을 구매하는 사람보다 조금씩, 소량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서 “다소 비싸더라도 질 좋은 것을 찾는 경향 또한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아들 이승수 씨가 서울 잠실에서 운영하는 쌀카페 ‘부농방앗간’

SNS로 소비자 만나
쌀카페에서는 언제나 갓 도정한 신선하고 맛 좋은 쌀을 판매하는 것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가공품으로 현미누룽지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또한 내년에는 못자리부터 수확까지, 아버지가 일 년 내내 땀 흘려 짓는 농사의 모든 과정을 영상과 사진으로 담아 SNS를 통해 홍보할 예정이다. 서울과 같이 평생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은 매일 밥을 먹으면서도 쌀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이남일·이승수 씨 부자는 쌀카페를 통해 맛 좋은 쌀을 선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기반이자 역사인 농경문화를 카페, 그리고 SNS라는 시대적 트렌드와 접목해 소비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농사, 거짓 없는 진실”
한편 이남일 씨는 평생 농사만 지어온 천상 농부이지만,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 관습적으로 농사를 짓기보다, 언제나 연구하고 고민하면서 자신이 생산한 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왕겨만 벗겨낸 현미를 진공포장해 보관하는 것 또한 일본에 견학 갔을 때 보고 배운 것이다. 그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포장·보관하는 것은 흔치 않을 것”이라며 “각 품종별로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 역시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10만 평에 달하는 대규모 쌀농사를 짓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골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남일 씨 역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받아 18살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도시로 떠난 친구들이 부러웠을 때도 있었을 테지만, 그는 지난 40여 년간, 우리 땅에서 점차 축소돼가는 농업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국민들의 식량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이 씨는 “해마다 쌀 소비량이 줄어 쌀이 남아돈다는 비관적인 목소리들이 계속 높아지고, 정부 정책이 농업을 외면해도 결코 생명산업을 저버릴 수는 없다”며 “농민들도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찾을 수 있게 만들까 깊이 고민하면서 도전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사 경력만 해도 40년이 넘는 ‘베테랑 농부’이지만, 논에 모를 심고 수확해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기까지 이남일 씨는 아직도 늘 노심초사다. 가물지는 않는지, 폭우가 내리지는 않는지, 자식처럼 기른 쌀을 제 값 받고 팔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지난 봄부터 지금까지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쌀 생각뿐이다.

“우리 다음 세대가 농업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농사는 노력한 만큼 수확할 수 있는 거짓 없는 진실입니다. 눈속임을 하거나 사기를 칠 수 없죠. 농민들은 언제나 이러한 진심을 담아 농사를 짓습니다. 이러한 농심이 사라져 가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앞으로 우리 후배들이 농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