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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8.12.17 13:55
  • 호수 1235

[칼럼] 최유호 당진시자원봉사센터장
나를 위한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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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로 그려낼래야 낼 수도 없이 알록달록 수놓은 금수강산이 내년 봄을 기약하며 긴 동면의 시간으로 들어가고 있다. 불을 놓은 듯 빨갛게 타오르던 산하도 훌훌 오색옷을 벗어버리고 앙상한 가지를 들어내고 있다. 

어느새 당진 전역에 감도는 차가운 공기들을 주목하노라면 더더욱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이것 뿐이랴, 사람들의 옷차림이 더욱 둔중하고 무채색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더라도 세월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이처럼 자연은 무심하게 고유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순리적으로 작동된다.

이에 반해 인간의 삶은 인위적이고 역동적이며 자의적이다. 자연마저도 자신의 이익에 맞게 개선하려는 게 인간의 욕망이고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은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에 맞서 사회적 존재로 진화해왔는지 모른다. 

사회적 존재란 무엇인가? 사회적 관계로 실존하는 것이 사회적 존재가 아닌가?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분리한 채 인간의 실존을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회복지학자들은 인간을 일컬어 ‘환경 속의 인간’이라고 생태체계적 관점에서 정의내리고 있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므로 사회적 관계 안에서 생명을 유지, 성장, 발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에게서 사회적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호존중, 상호신뢰, 사랑 등의 언어이다. 이를 형성하기 위해 사람은 일관된 행동, 예측가능한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안전감을 주고자 한다. 이런 안정감을 기반으로 믿음이 형성되고 상호존중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신뢰가 붕괴된 사회는 불행하다. 서로서로 견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다. 이런 사회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을 길러내게 되고 결국 공동체는 붕괴되고 힘과 돈이 사람관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희한한 세상으로 변질된다. 바로 이런 사회가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극단의 사회를 예방하고 안정된 사회로 만들어가는 것이 사람 가슴 속에 내재된 연민과 사랑이라고 하는 감정의 씨앗이다. 이 씨앗은 곤경에 처한 이웃을 보면 발아한다. 발아한 씨앗은 어느새 수풀을 이루고 거목으로 성장해 자신은 물론 상대방의 삶마저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만큼 강렬한 감정이며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신에너지가 연민이고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이 감정은 주로 상대를 향해 분출되는 것이지만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그래서 사랑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랑을 사회적 관계로 풀어놓은 것이 바로 자원봉사다. 고로 자원봉사는 사랑임에 동시에 상대에게 분출되지만 자신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정신에너지이자 나를 위하는 행동이다. 고로 자신과 타인을, 나아가 공동체를 살찌우는 자원봉사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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