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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으로추억속으로] “내 딸 영일·영이·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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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종 면천면 삼웅2리 이장

제가 면천초(45회)를 다녔을 땐 한 반에 60명이 넘고 전교생이 1500명에 가까웠어요. 폐교한 죽동초와 남산초도 당시 면천초의 분교였을 정도였죠. 하지만 지금은 전교생이 91명뿐이에요. 모교인 면천초에서 아동지킴이로 활동하는데, 과거 모습을 찾기 힘드네요. 조금은 안타깝기도 해요.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갔어요. 배제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서울 정동 이화여고 옆에 위치해 있었어요. 사춘기 때 이화여고만 기웃거리지 않았으면 최소 연세대는 갔었을 거예요. 당시 기숙학원이 최초로 생겼을 때 단과반도 다니고 했어요.
학교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진을 많이 남겨놨어요. 근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네요. 이젠 남은 것도 하나씩 지워갈 생각이에요. 이젠 다 내려놓고 건강 돌보면서 떠날 준비를 하고 싶네요.

▲ 1-1

사진 1
첫 번째 사진은 영이가 6살, 영일이가 5살, 영삼이가 2살 때, 아내(허신회)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에요. 첫째 영이와 둘째 영일이는 한 살 터울이에요. 영일이는 태어날 때까지 남자 아이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영일’이라고 남자아이 이름을 미리 지어 놨는데, 딸이었네요. 둘째랑 셋째는 나이 터울이 좀 나요. 셋째라서 영삼인데, 지금 보니 이름이 좀 짓궂은 것 같아요.

▲ 1-2

두 번째 사진은 아이들이 커서 찍은 사진이에요. 딸들도 나처럼 모두 교사가 됐어요. 이제는 모두 결혼해서 아이가 둘 씩 있어요. 아내와 나만 있을 땐 집이 큰 것 같은데, 14명 가족이 한 번에 모이면 자리가 비좁다고 느껴져요.

▲ 2-1

사진 2
송악중·고에서 2년 간 일하고 1978년에 서울의 수도전기공업고에서 근무하다 2006년에 퇴임했어요. 수도전기공업고에 다닐 때 청소년연맹 한별단의 지도교사로 활동했는데 수상훈련으로 토요일이면 짐을 싸서 학생들 데리고 다니기 바빴어요.

▲ 2-2

두 번째 사진은 88올림픽 때 호랑이탈 퍼포먼스를 연습했을 때 찍은 사진이에요. 그때 아이들을 많이 동원했는데, 86아시안게임에 동원되기도 했어요. 기숙사 학생들을 데리고 24시간 내내 연습했을 땐 정말 힘들었어요.

▲ 3

사진 3.
가장 친한 친구(성낙천)의 모습이에요. 고등학교 동창인 이 친구와는 정말 절친했는데 혈액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어요. 이 친구 중매도 제가 해줬는데, 면천면 송학2리 살던 유창수라는 친구를 소개해 줬죠. 친구가 떠나기 전까지 부부의 집을 자주 왕래하며 함께 놀았던 기억이 있네요.

▲ 4

사진 4.
마지막으로 아내(허신회)와 함께 찍은 사진이에요. 아내와 저는 연애 후 결혼했어요. 저는 퇴임하기 전부터 고향인 면천면 삼웅2리에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퇴임하자마자 혼자 삼웅리에 컨테이너 하나만 두고 살기도 했죠. 지금은 아내도 내려와서 함께 살고 있어요. 젊어서 학교 일로 가족에많이 신경 못쓴 것 같아 미안해요.

 

>> 유원종 이장은
- 면천면 삼웅리 출신
- 면천초·배제중·고·중앙대 졸업
- 송악중·고등학교 교사 재임
- 서울수도전기공업고 2006년 퇴임
- 현 면천면 삼웅2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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