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춤사위 하나하나에 한국을 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 백수경 씨

인간문화재 강선영 선생의 최연소 제자
“나를 키운 팔할은 어머니의 열정”
임아연l승인2019.01.14 15:07l(1233호)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느린 듯, 고요한 듯, 그러나 절제된 흥이 은근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댄스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에게 한국무용의 매력은 마치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오래 보아야, 자세히 보아야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왕비의 복식을 하고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했던 춤 태평무는 궁궐에서 예인들이 임금 앞에서 추던 춤으로, 백수경 씨는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태평무 이수자다.

 

인간문화재의 제자가 되다

수경 씨가 무용을 접한 건 7살 때다. 유치원을 다니면서 취미로 발레를 배웠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됐을 때, 바로 집 앞에 한국무용을 가르치는 국악원이 생겼다. 엄마의 권유로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던 한국무용이 인생이 됐다.

고등학생 때 무용을 했다가 결혼하면서 그만 뒀던 수경 씨의 어머니는 항상 마음 속에 무용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늘 아쉬운 마음을 안고 살았던 엄마는 수경 씨가 한국무용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첫 출전한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을 보고 수경 씨에게서 재능을 발견했다. 수경 씨는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엄마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말할 정도로 엄마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수경 씨가 故 강선영 선생의 마지막 제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던 엄마의 ‘극성’ 때문이기도 했다.

인간문화재 故 강선영 선생은 태평무 예능보유자로,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당대 최고의 예인으로 꼽히는 한성준 선생의 춤을 이은 제자다. 한성준 태평무 전수자는 한영숙 선생과 강선영 선생 둘 뿐이다. 강선영 선생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독일·미국·캐나다 등 전세계에서 1000회 이상 공연하는 등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오로지 춤밖에 모르던, 한국무용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인터넷이 없어 어떤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없던 시절, 수경 씨의 어머니는 수소문 끝에 고향인 포항에서 무작정 상경해 강선영 선생의 자택을 찾았다. 훗날 다른 제자들이 “선생님은 학생을 제자로 받지 않는데, 왜 수경 씨를 받아들였냐”고 질문하자 강선영 선생은 “수경 씨의 어머니에게서 내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성준 선생을 찾아가 딸을 맡겼던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수경 씨의 어머니에게서 느꼈기 때문이라고. 마치 운명 같았다. 그렇게 엄마의 열정 덕에 수경 씨는 강선영 선생의 최연소 제자가 됐다.

수경 씨는 “인간문화재 선생님께 직접 이수받았다는 건 굉장히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며 “재작년 아흔의 나이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휠체어에 앉아서도 춤을 추셨던 강선영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는 “춤은 그냥 추는 게 아니라, 즐거울 때 추는 것이 춤이라며, 춤을 출 때는 내 마음 속에 감정이 우러나와야 한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꿈꾸던 국립국악원 단원이 됐지만…

한편 예술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서울로 올라간 그는 그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혼자 살았다. 어린 나이에 힘들 법도 했지만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마냥 신났던 시기였다. 이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과 대학원까지 큰 어려움 없이 원하는 학교에 차례대로 진학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한계를 느꼈다. 한국무용을 전공해 앞으로 어떻게 무얼하며 살아야 하는지 막막함이 찾아왔다. 부모님이 인생을 바쳐 딸의 꿈을 지원해 여기까지 왔지만, 한국사회 대부분의 예술 분야가 그러하듯 소위 ‘먹고 사는 일’이 막막했다. 여느 20대 청춘들처럼 그도 방황했고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러다 고향인 포항으로 내려가서 무용학원을 차린 엄마와 함께 일하다 부산에 위치한 국립국악원 무용단에 합격했다.

전공자라면 모두가 꿈꿨던 국립국악원이지만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사람들이 정말 기쁠 때 덩실덩실 절로 춤을 추는 것처럼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예술적 활동이 아니라, 감정 없이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일이 반복되자 춤을 추는 기계처럼 느껴졌다. 선영 씨는 인생에서 꿈꿨던 일 하나를 이뤘다는 것에 만족하며 국립국악원을 나왔다.

이후 원당초등학교가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한국무용을 시작하면서 당진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러다 당진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을 만나 올해 2월 결혼하면서 당진에 정착했다. 지금은 당진문화예술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무용은 하면 할수록 그 깊이를 갖게 돼요. 그러나 저 혼자 즐기고 알고 있기보다, 더 많은 당진시민들에게 한국무용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어요. 지역에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무용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 백수경 씨는
- 1985년 포항 출생
- 선화예중·국립전통예술고 졸업
- 중앙대 무용과 한국무용 전공
- 중앙대 교육대학원 무용교육 전공
- 부산 국립국악원 무용단 출신
-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강선영류) 이수자


임아연  zelkova87@hanmail.net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임아연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31778 충남 당진시 남부로 278 명성빌딩 1동 5층  |  개인정보 관리 책임자 : 김예나 기자   |  청소년보호 책임자 : 김예나 기자
사업자 등록번호 : 311-81-07426  |  제보 및 각종문의 : 041-355-5440  |  팩스 : 041-355-2842
Copyright © 2022 당진시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