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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 입력 2019.01.18 18:52
  • 호수 1241

“심재영 모델론은 왜곡·날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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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리 출신 故 백승구 씨 저서 <심훈의 재발견>
‘상록학원설’과 ‘모델론’ 통해 심재영 모델론 비판
“심재영·김학준·박동선 모두 박동혁 실제모델 아냐”

▲ 백승구
▲ 소설 <상록수>

 

<편집자주>

송악읍 본당리 출신으로 심훈연구소장을 맡았던 故 백승구 씨는 지난 1985년 <심훈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심훈의 생애와 작품들을 망라해 풀어낸 것으로, 그 중에는 ‘상록학원설’과 ‘모델론’이라는 글이 약 40쪽에 걸쳐 기록돼 있다. 백승구 씨는 두 글을 통해 심훈의 조카 심재영이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의 실존인물이라는 ‘심재영 모델론’을 강하게 비판하며, 심재영 모델론이 얼마나 왜곡되고 과장됐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백승구 씨의 저서 <심훈의 재발견>에 실린 내용을 발췌해 정리했다.

상록초 모체가 상록학원? 

심훈의 대표소설 <상록수>는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소설 현상에 당선된 작품이다. 소설 당선 상금의 일부로 심재영이 상록학원을 설립했고, 상록학원이 상록국민학교의 모체가 됐다는 주장에 대해, 故 백승구 씨는 “날조된 기록”이라고 밝히고 있다.

백승구 씨가 쓴 ‘상록학원설’에 의하면 “8.15 해방 후 부곡리 주민들이 마을회관을 세웠고, 송악국민학교에서 부곡리 마을회관 건물에 잇대 교실 2개를 신축한 후, 새로 지은 2개 교실과 마을회관 건물을 이용해 송악국민학교 분교장을 운영했다”며 “송악국민학교 연혁지에 이 기록이 분명하게 있다”고 기술했다. 이어 “송악초등학교 분교장은 1958년 한진국민학교로 승격됐고, 4년 후 상록국민학교로 개명(현재 상록초등학교)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 씨는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심훈의 당선금 일부로 설립된 상록학원이 상록국민학교로 이어졌다는 당시 상록국민학교에 비치된 연혁지 기록에 대해 당시 당진군교육지원청에 시정을 요구했다. 이에 상록국민학교가 주변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교 연혁지에 수록된 상록학원에 대한 기록은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며 백승구 씨의 건의를 받아들여 해당 내용을 삭제조치 했다.

▲ 심훈

“김학준·박동선 모델설도 어불성설”

백 씨는 또한 ‘모델론’을 통해 소설 <상록수>를 둘러싼 주인공 박동혁의 실제 모델을 살피고 있다. 먼저 여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인물이었던 故 최용신의 생애와 그의 계몽운동을 설명했다. 백 씨는 최용신에 대한 내용 말미에 “최용신이 사망하자 당시 각 신문에 업적이 보도된 것을, 심훈이 <상록수> 소설을 쓰면서 여주인공으로 분신시켜 등장시켰다”며 “최용신을 두고 여주인공(채영신)의 ‘모델’이라 해도 틀리지 않으나, 최용신은 모델 이전에 농촌사업가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기록했다.

한편 남자주인공 박동혁의 실제 모델에 대해 최용신의 약혼자였던 ‘김학준’과 송악면 부곡리 출신으로 부곡리에서 처음으로 문자보급운동을 전개한 ‘박동선’이라는 설에 대해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백 씨는 김학준 모델설에 대해 “김학준의 업적이야 어떻든 최용신의 약혼자일 뿐이었다”며 “<상록수>에 나오는 남주인공의 모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동선 모델설에 대해서도 “남주인공(박동혁)의 모델이었다고 하는 설은 어불성설에 해당된다”고 전했다.

“심재영 공동경작론은 계모임”

소설 <상록수>의 남주인공 실제 모델이 심훈의 조카 심재영이라는 설에 대해 백승구 씨는 15쪽 가량의 지면을 할애해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우선 심재영이 진행했던 야학에 대해서 백 씨는 “송악면 부곡리에 살던 박동선이 야학을 중단하자, 심재영이 마을청년들과 함께 이어서 운영했고, 이 야학도 상설기구가 아니라 농한기 3개월 동안 다른 사람의 사랑채를 빌어 운영했다”면서 “그 시대에 유행했던 문자보급운동”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심재영의 활동이 <상록수>에 나오는 일들과 유사하다는 항간의 주장에 대해 “소위 말하는 공동경작회에 관한 것인데, 당시 지주였던 심재영이 마을청년들과 규합해 계모임 같은 조직을 만든 다음, 이들과 같이 자기 집의 논을 세내어 경작한 후 거기에서 나오는 소득을 계원들의 활동에 썼다”며 “이런 일을 가지고 오늘날에 와서 소설 속에 나오는 공동경작이었다고 횡설수설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백 씨는 “<상록수>에 적힌 농우회의 공동경작론은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적인 것이고, 심재영 등이 했다는 공동경작론은 일종의 계모임적인 것”이라고 짚었다.

이외에도 백승구 씨는 모델론에 대해 잘못 전하고 있는 일부 신문과 잡지 등의 내용을 살피기도 했다. 심재영이 해병지에 기고해 발표한 내용들을 간추려 옮겼고, 이에 대해 실제로 송악면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그의 경험을 토대로 반박의견을 펼쳤다. 이를 통해 백 씨는 심재영 모델설이 과장되고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글 말미에 “소설 속 남주인공 모델이 심재영이라고 고집하거나 내용을 날조하면서까지 모델 운운하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소설 <상록수>가 지니고 있는 진가를 재고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며 유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 故 백승구 씨는
- 1933년 송악면 본당리 출생
- 심훈연구소 소장
- 심훈선생기념사업회 지도위원
- 상록문화제집행위원회 부위원장
- 동아일보사 기지시지국장
- 미문출판사 편집인
- 저서: <심훈의 연보를 재고한다> (1981), <심훈약사> (1984), <심훈의 재발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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