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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부터 이어온 합덕제재소

신년기획 가업을 잇는 사람들 김준 합덕제재소 만인종합유통 대표
합덕읍 운산리에서 80년 넘게 한자리 지켜와
“목재 뿐 아니라 모든 건축자재 다뤄요”
박경미l승인2019.01.18 18:55l(12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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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를 이어 합덕제재소 만인종합유통을 운영하고 있는 김준 대표

합덕읍 운산리에 위치한 합덕제재소는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함께 지나온 제재소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지금은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으로 과거 나무를 켜던 제재소에서 현재는 건축자재 도소매 전문점으로 업종의 폭이 넓어졌지만 과거 나무를 켜던 제재소 기계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80년 역사 이어온 합덕제재소

정확한 설립연도를 모를 정도로 합덕제재소의 역사는 오래됐다. 합덕제재소를 2대째 운영했던 김병수 전 대표는 “부친 때부터 합덕제재소를 운영했다”며 “최소 8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의 부친인 故 김홍식 씨와 큰아버지인 김의식 씨, 고모부 운종현 씨가 합덕제재소에서 일하다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합덕제재소를 두 형제가 도맡아 운영하게 됐다. 제재소 일은 쉽지 않았다. 기계도 마땅치 않아 큰 목재를 톱으로 썰어야 했다. 하지만 쉽사리 일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해방 직후 6.25까지 격동의 역사는 계속됐지만 일을 놓기에는 가족들의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큰아버지인 김의식 씨는 타지로 떠났고, 1대 운영자인 김홍식 대표는 혼자서 합덕제재소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 1 과거 나무를 켜던 기계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고 멈춰있다.

사업장 지키라는 아버지의 유언

1969년 당시 18세의 어린 나이로 김 전 대표가 합덕제재소를 이어 받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김 전 대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시 18세였던 내가 합덕제재소를 이어 받았다”며 “평소 제재소 일을 거들던 터라 적응은 빨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큰아버지 대신 아버지와 동업을 했던 이와는 호흡이 맞지 않아 결국 사업권을 넘겨주게 됐다고. 이후 김 전 대표는 방앗간 일과 농사를 병행했지만 모두 쉽지 않았다. 그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사료판매업을 새로 시작했고, 호황을 맞았다. 그러나 사업이 번창하면서도 김 전 대표의 마음에는 합덕제재소가 늘 남아있었다.

“사업이 번창하는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유언이 종종 생각났어요. 합덕제재소를 지키라던 아버지의 말씀이 끝내 마음에 걸려 합덕제재소를 다시 운영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 2 나무를 재단하던 합덕제재소의 과거 모습

한편 합덕읍 서동리에서 나고 자란 3대 운영자인 김준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합덕제재소 풍경을 떠올렸다. 10여 명의 많은 인부들이 커다란 나무를 자르던 모습, 나무를 자르는 데 쓰던 기계, 기계에서 나오던 무수한 톱밥과 나무의 냄새까지 아직도 생생하다.

“하루 종일 나무를 잘랐어요. 기계로 나무를 자르면 톱밥이 어마어마하게 나와요. 톱밥 때문에 기계 밑에 구덩이가 좀 깊게 파져 있는데, 중학생 때 주말이면 친구들과 종종 구덩이에 쌓인 톱밥들을 퍼내곤 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하는데다 용돈까지 받으니 꽤 재밌게 했죠.”

군대 제대 후 김 대표는 여행사 일을 배우기도 했고,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으며 태안에서 숙박업을 하기도 했다. 사회경험을 쌓는다며 2~3년간 곳곳을 다니며 일하던 그에게 아버지는 제재소에 들어올 것을 권했다. 당시 큰 형은 아버지 밑에서 기술자로, 작은 누나는 경리로 일하고 있었기에 그도 자연스레 제재소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어린 시절 즐거웠던 추억과 달리 김 대표는 제일 밑바닥부터 일을 배우면서 고생했다.  나무를 다루는 작업은 굉장히 힘들었다. 아무리 두꺼운 털장화를 신어도 발이 시려울 정도로 난방이 안 되는 창고에서 나무파렛트를 만들었고, 인근 산에서 벌목을 하고는 산 속으로 기계를 들일 수가 없으니 직접 통나무를 메고 나오기도 했단다. 수백 그루의 나무를 하루 종일 재단하고 켜면 손가락이 제대로 펼 수조차 없었고 척추는 휘어 굳어서 허리통증을 앓았다.

▲ 3 현재 합덕제재소는 나무를 켜지 않지만 당시 작업 기계가 남아있다.

현재는 건축자재 총판

20대에 가장 밑바닥에서 제재소 일을 시작했던 김 대표는 30대 중반쯤에는 앞에 나서기 시작했다. 서서히 아버지 김 전 대표에서 그의 체제로 제재소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시대는 계속 변화해갔고, 흐름에 따라 건축 자재들도 변했다. 나무에서 철, 시멘트 등의 재료들이 수요가 늘어나면서 목재산업은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다. 많은 제재소들이 문을 닫았고 합덕제재소도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계속 목재 산업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했던 그는 아버지와 상의 끝에 철물건재를 다루기로 했다.

“처음에는 못부터 시작했어요. 나무를 하니까 옆에 못이 있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죠. 제재소 한 쪽에 못을 두기 시작했는데 그 후 거래처에서도 이것저것 찾다보니 이렇게까지 커졌네요.”

▲ 4 현재 합덕제재소는 철물점 등 건축자재 도소매로 사업을 확장했다.

합덕제재소는 이후 철물건재를 다루면서 목재뿐만 아니라 철물, 시멘트, 적벽돌 등 건축자재 도·소매로 사업을 확장했다. 현재는 직접 나무를 자르고 켜는 작업은 하지 않지만 당시 나무를 재단하고 자르던 기계는 오롯이 남아 과거의 합덕제재소의 영광을 떠올리게 한다. 
“합덕제재소가 세월이 흐르면서 만인종합유통으로 발전했어요. 나무 켜는 작업은 하지 않지만 이곳에서 모든 건축자재를 구입할 수 있어요. 지역민들에게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드리고 싶고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습니다.”

>>김준 대표는
· 합덕읍 서동리 출생
· 합덕초, 합덕중, 서야고 졸업
· 합덕읍청년연합회 사무국장 역임
· 새마을지도자 합덕읍 협의회장 역임
· 현 합덕제재소 만인종합유통 대표

>>합덕제재소 만인종합유통은
■위치 : 합덕읍 합우로 78
■문의 : 362-5770, 363-0033

 


박경미  pkm94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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