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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01 20:07
  • 호수 1243

[가업을 잇는 사람들]
동구 밖 과수원 박호완 대표(합덕읍 재오지리)
아버지도 아들도 대이은 농부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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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대에 걸쳐 재오지리서 나고 자라
담배농사에 이어 사과농사까지 “풍년농사 기원”

설 명절을 앞두고 ‘동구 밖 과수원’의 주인인 박호완 대표의 손이 바쁘다. 저온 창고에 저장해 두었던 빨갛게 익은 사과를 꺼내 알알이 닦아 차곡차곡 포장 상자에 담는다. 모두 여름 내 땀으로 일군 밭에서 수확한 ‘내 자식’ 같은 사과들이다.

이 밭에는 박호완 대표만이 아닌 아버지에 그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땀도 서려 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난 농촌에서 박홍규·박호완 부자가 대를 이으며 농사를 일궈오고 있다.
합덕읍 소재지에서도 한참 가다 보면 시골 마을 재오지리가 나온다. 재오지리 입구에서 ‘동구 밖 과수원’이라는 간판을 만날 수 있다. 과수원 이름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굽이 진 마을 길을 따라가다 보면 넓게 펼쳐진 과수원이 펼쳐진다.

이곳은 언제가 시작인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됐다. 어린 시절의 박호완 대표도 학교가 끝나면 아버지 박홍규 씨를 도와 농사일을 했고, 아버지 박홍규 씨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오기 무섭게 일손 도와
재오지리에서 박호완 대표가 다녔던 합도초등학교까지는 1시간30분을 걸어야 도착한다. 동네 친구들과 놀며 쉬며 학교에 갔다 오면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농사일을 도왔다.

여름방학은 더더욱 고역이었다. 오랫동안 담배 농사를 지었기에 가장 더운 여름날 담배 잎을 수확하고 말려야 했다. 박 대표는 “다른 친구들은 방학이라고 신나서 노는데 나는 도리어 농사 일을 돕느라 방학 때가 가장 바빠 싫었다”며 “아직도 그 더운 날 아버지 따라 담배 농사를 돕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아버지 박홍규 씨도 마찬가지다. “일 한 기억 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로 박 씨의 오래 묵은 기억 역시 9세 때 아버지 故 박의수 씨를 따라 농사일을 돕던게 첫 시작이다. 담배 농사를 비롯해 콩과 보리를 키우기도 하고 작은 논에 쌀을 기르기도 했다. 박 씨는 “옛날 재오지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며 “하루 먹고 살기에도 바쁜 시절이기에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 대신 자유와 여유 택해

아버지와는 반대로 박호완 대표는 사실 농업을 이을 생각이 없었다. 합도초와 합덕중, 합덕농고 졸업 후, 군대를 제대하고 2년 간 유통 관련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일이 즐겁지 않았다. 농사와는 반대로 시간에 얽매여야 했고, 자유롭지 못했다고.

또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아버지를 볼 때 안타까웠단다. 일을 그만 두고 3남3녀 중 다섯째인 그가 아버지를 따라 농촌에서 농업으로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 아들 박 대표를 보며 아버지 박 씨는 “아들이 하겠다고 하니 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들이 일손을 돕겠다고 나서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담배 농사에서 사과 농사로

20대 초반 농업을 시작하며 그는 논과 밭을 재정비했다. 빨갛게 익은 사과가 보고 싶어 담배 밭을 없애고 그 위에 과나무를 심었다. 또 젊은 농군으로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그동안은 농기계를 대여해서 사용했기에 번번이 농사에 때를 놓치기도 하고 어려움도 있었다. 박 대표는 경운기를 시작으로 이앙기부터 굴삭기까지 여러 농기계를 구입했다. 덕분에 농업 일손을 돕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일도 맡아 가며 사업 영역을 하나 둘 넓혔다.

또한 무농약부터 시작해 농법을 동구 밖 과수원에서 실현해보기도 했다. 박 대표는 “친환경 농법을 연구해가며 수차례 시도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며 “비록 실패했어도 여러 도전을 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아들 꿈도 ‘과수원 주인’”

한편 그는 못 이뤘던 공학도의 꿈을 실현하기도 했다.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한 박 대표는 말 그대로 주경야독했다. 신성대학교 자동차학과 야간반을 다니며 낮에는 농사를, 밤에는 공부를 했다. 그는 “당시엔 학비를 충당하랴 농사일하랴, 또 아이들까지 키우려다보니 참 힘들었다”며 “하지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기계 쪽으로도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도시가 아닌 농촌을, 회사가 아닌 농사를 택했지만 이처럼 못 다한 꿈에 도전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것이 그가 계속해서 농업에 종사하는 이유란다. 박 대표는 “도시로 떠난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자연 속에서 여유를 갖고 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 농사와 함께 지역 일도 맡고 있다. 지난해는 합덕읍주민자치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으며, 의용소방대와 청년회의소 등에 소속돼 있다. 그는 “지역에서 살며 고향을 지킨다는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막내아들 가경이의 학교를 갔더니, 학교 게시판에 걸린 가경이의 장래희망 칸에 ‘과수원 주인’이 있더라고요. 그거 보고 한참을 웃었어요. 지금은 꿈이 바뀌었을라나 모르겠네요. 아들까지 여기에서 농사지으면 몇 대째일지…. 올 2019년은 우리 가족 모두가 화목했으면 좋겠고, 농산물 가격이 안정됐으면 좋겠어요. 특히 수입과일 때문에 사과와 배 농사를 하는 농민들이 매우 힘들어요. 올해에도 풍년 농사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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