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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특집 특별기고 4] 4.4독립만세운동의 참여인과 이인정, 남주원, 송재만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의 의사·열사들 당진시대l승인2019.03.15 20:25l(12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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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호서고등학교 교사

>> 편집자주_ 1919년 3월 1일, 한반도 전역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서울 탑골공원에서 울려 퍼진 독립만세의 함성은 전국으로 확산됐고, 당진에서도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과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이 이어졌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번호부터 5회에 걸쳐 김남석 호서고등학교 교사의 글을 연재한다.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이하 4.4만세운동으로 줄임)은 대호지면의 전주민과 천의장터에 운집한 정미면민이 참여한 내포지역 최대의 독립만세운동이었다.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인 만큼, 4.4 만세운동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많은 의사(義士)와 열사(烈士)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호에서는 4.4 만세운동의 대표적인 의·열사를 살펴보고, 이들의 독립투쟁을 추모하고자 한다.

만세운동의 대표인물 - 이인정 의사

첫째로 주목되는 분은 이인정(1859~1934) 의사다. 그는 만세운동 당시에 대호지면장을 지냈으며 1897년부터 1912년까지는 자인군(경북 경산) 군수를 지냈다. 조선총독부는 그의 경력을 활용하여 대호지면의 행정을 맡겼다. 하지만 그는 일신의 안일을 접어두고, 분연히 일어나 4.4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만세운동에는 아들 이두하(1900~1950)와 조카 이대하(1889~1950)도 함께 하였다. 그는 만세운동 당일, 대호지면사무소에서 천의장터에 이르는 7㎞의 도로를 말을 타고 선두에서 주민들을 이끌었다. 만세운동이후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고, 조카 이대하도 징역 8월을 살았다. 이후 정부는 이들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만세운동의 중심인물 - 남주원 의사

둘째로 강조할 분은 남주원(1893~1946) 의사다. 그는 4.4 만세운동의 핵심인물인 남주원 의사는 종2품 한성부 우윤 장위영 경무사 남명선(1846~1916)의 손자이며, 도호의숙 유생출신으로 서울의 중동학교를 졸업한 근대지식인이었다.

또한 대호지면에서 제일의 부호였다. 사성리 포구 인근에 있는 그의 주택은 대지면적만 2433평이었다. 그의 토지 보유량은 대호지면 안에서만 총 200필지, 21만여 평에 이르렀다. 4.4만세운동에 필요한 경비는 대부분 그가 부담했다. 그는 만세운동이후 공주형무소에서 1년의 옥고를 치르고 출감하였다. 그리고 모든 재산을 처분하였고, 해방을 맞으면서 아산군 영인면 아산리에서 운명하였다. 남주원 의사가 재산을 처분하고 대호지를 떠난 것은 일본 경찰의 집요한 감시와 억압 때문일 것이다. 해방 후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만세운동의 선봉에 선 송재만 의사

셋째로 살펴볼 분은 송재만(1891~1951) 의사다. 만세운동 당시, 송재만은 대호지면사무소의 용인이었다. 면서기로 근무하던 김동운, 강태완과 함께 전 주민에게 보내는 공문을 제작하였다. 그것은 도로와 가로수를 정비하라는 면장의 지시사항이었다. 송재만은 이 공문을 대호지면 9개리 이장들에게 배부하고, 4월 4일에 전 주민을 동원하였다.

그는 애국가 인쇄물 400매를 군중에게 배부하고, 천의장터에서는 만세운동의 선두에 섰으며, 천의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을 때, 죄목은 강도, 소요, 상해, 가택침입, 보안법, 출판법, 문서위조 등 7종에 이르렀다. 그가 받은 5년형은 4.4 만세운동 참여자의 형량 중 가장 많았다.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만세운동의 순국열사 – 송봉운, 김도일, 박경옥, 이달준

넷째로, 우리가 4.4만세운동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분들은 바로 순국하신 분들이다. 송봉운(1891~1919)은 대호지면 사성리 출신으로, 4.4 만세운동이 끝난 뒤 대호지면 조금리에서 일본 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김도일(1886~1919)은 대호지면 마중리 출신이다. 그는 만세운동이후 체포되어 공주감옥으로 넘겨진 5월 24일 옥사하였다. 박경옥(?~1919)은 대호지면 사성리 출신이다. 그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6월 5일, 공주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이달준(1881~1919)은 대호지면 송전리 출신이다. 송전리 주민들은 4.4 만세운동 참여한 뒤에 4월 8일을 기하여 만세운동을 또다시 전개하였다. 이달준은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8월 12일 옥중 순국하였다. 당시 일본 경찰은 이달준이 병으로 사망하였다고 위장하고 시신을 없앴다.

유족들은 시신이 금강하류에 버려졌다는 소문을 듣고, 샅샅이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전한다. 해방 후 정부는 유족이 없는 박경옥을 제외하고, 3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4.4 만세운동에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참여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분은, 낙동파 남택희의 아들인 남상돈(1888~1921), 남상락(1892~1931), 남상찬(1899~1963) 3형제다. 남상돈은 가혹한 고문으로 출옥하자마자 순국하였고, 남상락은 램프와 자수태극기로 유명하며, 남상찬은 대호지의 큰 유학자였다. 또한 남성희 3부자도 유명하다. 남성희는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태형 90대를 맞았고, 장남인 남상학은 청산리전투에서 전사하였으며, 차남인 남상은은 징역 8월의 옥고를 치렀다.

󰡔해강선생유집󰡕(2006)에 보면, 4.4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해강 남상락(1892~1943)의 옥중시가 있다. “영웅호걸 누구인고, 고해종적(苦海踪跡) 가소롭다. 무궁화 금수강산 언제나 이뤄본가, 뜻 두고 이루지 못하니, 그를 서뤄(설워) 하노라”. 이들은 죽음이 아른거리는 옥중에서도, 나라를 위한 지조를 한시도 꺾지 않았다. 이들의 눈앞에는 오직 ‘독립’이라는 두 글자만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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