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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9.05.13 11:52
  • 호수 1256

[종교칼럼] 은퇴
박용완 탑동감리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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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나는 38년 간 개척, 시무하던 탑동교회 담임목사로서의 현직에서 은퇴를 했다. 이젠 교회 담임목사가 아닌 “자연인 박용완”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마음이 가볍다. 이것은 담임 목회라는 짐(?)을 벗고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리고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연다는 의미에서의 가벼움이다.

은퇴란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은퇴는 지난 46년이라는 목회일정과 탑동교회 개척 후 38년이란 모든 성직자로서 삶의 익숙했던 것들로부터 멀어지는 아쉬움이 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너무 자유롭다. 당진에서 태어나 당진을 떠나본 일이 없는 내가 고향 당진에서 46년을 목회자로 세움을 입었으니 그 세월이 가히 육중한 삶의 거목처럼 버텨왔다고 느껴진다. 

많은 분들이 나의 은퇴를 아쉬워했다.(사실 인사체면으로 격려한 분들이 많았겠지만) “아직 젊은 것 같은 데 벌써 은퇴하세요?” “어떤 느낌이세요?” “서운하시죠?” “아직 정정하시잖아요” “축하한다고 해도 될까요?” 나는 축하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쉬움 30%, 홀가분함 70%라고도 했다.

아쉬움이야 46년 동안 설교하고 각종 예배를 집례하고 수많은 삶들을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매만지는 일정 속에 살아왔고, 그리고 다양한 삶 속에서 갈등하는 신도들과 함께 나눔을 가졌던 일상 속에서, 목회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본 일이 없으니, 숙달된 일상들과의 일단 내려놓음이니….

또한 내게 은퇴라는 개념은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니 기대와 홀가분함이다.

‘은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맡은 바 직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서 한가로이 지냄’이라고 쓰였다. 다른 직종보다 더 많은 시간, 70에 은퇴하지만 사실 백세시대라는 의미에서 보면 적어도 20~30년을 이 땅에 발붙일 시간이 있으니 이 후 삶의 설계가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제는 지남을 회고하고 새 시간에 대한 전망을 할 시간이다.

나는 스스로 약점이 많은 목회자라고 늘 생각해왔다. 항상 내가 좀 더 최선을 다하지 못한 아쉬움들이 많았다. 항상 설교는 번지름하게 외쳐댔지만…. 물론 자신의 인간적 한계 안에서만 목회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목회의 가장 큰 장애물은 나 자신이었다. 

나의 목회일상은 수없이 나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고 십자가를 지는 연속이었다. 본질적인 것이야 도전받더라도 끝까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지만, 수많은 부수적인 것들 때문에 답답해하고 기다리고 자신을 죽이면서도 의연한 자세로 서있어야 하는 자기 죽음이었다.

당시에는 내심에 불평스러웠지만 지나고보니 그건 옳았던 때가 많았다. 이러한 일상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니 연륜으로만 계수해서 온전한 목사일까도 생각해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삶의 무게를 온전히 책임져야한다는 숙제와도 같다. 그렇게 오늘을 맞이한 것이다.

이제 내게는 은퇴하므로써만 주어지는 혜택이 있다. 나와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사역을 위한 당면한 목회자의 영성이 이제는 단독자로 그 분앞에 서는 기대가 있다.
그리고 당진지역의 미제로 남아있는 기독교의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고 조명하는 끝없는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 착수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태국 골든트라이앵글 산악지역의 소수민족 종교지도자들의 부름을 받고 목회 코칭으로 마지막 헌신의 길을 걸어갈 예정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기대는 된다. 기독교 역사란 과거의 가치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며, 미래를 소중히 열어가는 소망의 삶을 선포하는 깃발이다. 그것을 위해 은퇴 아니면 갈 수 없는 나의 또 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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