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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 봉사하는 노인 김응배 씨 (정미면 천의리)
“봉사는 내 행복…건강 허락하는 한 봉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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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프로그램으로 배운 수지침…20여 년간 봉사로 이어와
봉사단 외에도 개인봉사와 타 지역 봉사까지 열심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세상은 편리해졌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는 여전히 몸과 마음을 써야 한다. 묵묵히 오랜 시간동안 우리 삶에서 봉사하며 지역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83세에 봉사하는 노인 김응배 씨도 그 중 하나다. 김 씨의 따듯한 손길이 닿으면, 우리의 마음에도 훈훈한 온기가 스며든다.

 

20여 년 간 수지침 봉사

정미면 천의리에 거주하는 김응배 씨는 봉사로 노년의 삶을 꽃 피우고 있다. 특히 20여 년 동안 한 봉사에 매진해온 그의 모습은 이웃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83세의 김 씨는 당진시자원봉사센터 소속 손사랑봉사단에서 19년째 활동하고 있다. 그는 매주 화요일이면 봉사단원들과 함께 지역의 요양원, 경로당 등을 찾아 수지침 봉사를 한다.

김 씨는 흰머리에 주름진 세월의 미소를 가진 노인들 틈에서 또래 친구들의 건강을 살핀다. 노인들의 손바닥을 잡고는 어디가 불편한지, 아픈 곳은 없는지 묻는다. 김 씨는 “노인들이 체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할때면 증상에 맞는 혈자리를 찾아 손을 꾹꾹 눌러준다”고 말했다.

손을 어루만지며 노인들의 건강을 살피는 봉사단에서 그는 노인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까지 어루만진다. 그에게 수지침 봉사는 단순한 봉사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다.

“사람들이 어디가 아프고 불편한지 묻는 것과 더불어 그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요. 요즘 생활은 어떤지, 힘든 일은 없는지 등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죠. 젊은 시절 사회의 일꾼이고 지역에서 활발하게 생활했던 그들이 이제는 나이가 들면서 사회에 한 쪽으로 비켜나게 됐잖아요. 우리는 수지침 봉사를 하면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노인과 사회를 잇는 연결고리가 돼주고 있어요. 사람들 대부분이 또래다 보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소통이 잘 돼요.”

‘나’보다 ‘남’을 위하여

한편 김 씨의 수지침 봉사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처음 수지침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것은 주민자치프로그램 때문이었다. 당시 서산시 운산면사무소에서 주민자치프로그램으로 댄스교실, 노래교실 등을 다니던 그는 수지침 프로그램이 생기자 흥미를 갖고 배우기 시작했다.

김 씨는 “당시 당진에는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운산에서 주민자치프로그램을 듣곤 했다”며 “수지침 프로그램은 위급한 상황에서 응급처치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 63세에 수지침을 배우는데 처음엔 혈자리 찾는 게 어려워 힘들었다”며 “하지만 꾸준히 연습해 이제는 베테랑이 됐다”고 전했다.

운산에서 수지침을 배워 봉사하던 그는 친구에게 당진에서도 수지침 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이후 김 씨는 당진시자원봉사센터 소속 손사랑봉사단에 속해 당진에서 수지침 봉사를 시작했다.

개인 봉사 외에도 노래봉사까지

봉사단의 봉사가 끝나도 김 씨의 일주일은 바쁘다. 개인적으로도 요양원과 경로당을 다니며 수지침 봉사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수지침 봉사 외에도 노래봉사를 하고 있다.

노래봉사는 운산에서 진행한다. 운산면의 주민자치프로그램이었던 노래교실이 노인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노래봉사단으로 활동이 이어졌다. 당시 노래교실을 들었던 그도 봉사단에 참여해 20년 동안 단원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김 씨는 “노래교실을 통해 그동안 배웠던 노래들을 노인들에게 들려준다”며 “주로 노인들이 <시계바늘>, <꽃바라기>, <묻지 마세요>, <소풍 같은 인생> 등 신나는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도 노인들이 많이 좋아해준다”고 덧붙였다.

바쁜 봉사로 김 씨는 마을 경로당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행에는 한 번도 참석해보지 못했단다. 그는 “회원들이 봉사를 쉬고 여행을 다녀와도 된다고 했지만 마음이 불편하다”며 “여행도 좋지만 봉사하는 게 더 좋아 빠트리지 않고 봉사활동을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한편 김 씨는 봉사 외에도 많은 기부를 해왔다. 수시로 지역 사회에 불우이웃을 위해 쌀과 라면 등을 기부했다. 지난 2014년에는 아들의 결혼식 때 화환 대신 받은 쌀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정미면사무소에 전하기도 했다. 

 

지역사회를 위해 힘써와

김 씨의 봉사는 알고 보면 더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그는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에 힘써왔다. 

대호지면 두산리에서 태어났던 그는 생계를 잇고자 정미면 천의리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서 그는 30대에 마을반장부터 시작해 정미면 자율방범대장, 바르게살기운동 정미면위원장, 정미면 의용소방대장 등 여러 사회단체장을 맡으면서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를 펼쳐왔다.
그중 의용소방대장과 자율방범대장을 맡아 활동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그는 “여러 사회단체에서도 지역을 위해 봉사했지만 이 두 가지 일은 지역을 위해 직접적인 봉사를 펼쳐 보람 있었다”며 “지역 주민들을 위해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관과 함께 화재를 진압하기도 하고,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관과 함께 출동하기도 했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김 씨가 오랜 기간 동안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부모의 사랑 덕분이었다. 외아들로 태어났던 그는 부모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부모의 큰 사랑에 오히려 어린 시절 버릇이 없었을 정도라는 그는 “조금씩 나이가 들자 부모님의 사랑을 사회에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봉사하면서 스스로가 겸손해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 됐다”고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 봉사하길”

봉사가 보람있고 뜻 깊은 활동이나 이를 두고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이 63세에 봉사단 활동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족들은 김 씨의 활동을 걱정했다. 그는 “자식들이 건강을 조심해야 할 나이에 봉사한다고 이곳저곳 다닌다며 걱정이 많았다”며 “자녀들의 말도 이해가지만 봉사하는 삶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건강이 다하는 날까지 봉사를 계속하고 싶다는 김 씨는 오늘도 봉사를 위해 집을 나선다.

“봉사해서 행복해요. 죽을 때까지 봉사를 이어나갈 거예요. 한 가지 바라는 점은 사람들의 봉사 참여가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어요. 봉사단에 신입회원이 들어와 수지침을 배워도 봉사까지 잘 이어지지 않아서 아쉬워요.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봉사에 함께 하길 바라요.”

 

>> 김응배 씨는

- 1939년 대호지면 두산리 출생
- 대호지 초등학교 졸업
- 정미면 자율방범기동순찰대장, 정미면 바르게살기위원장, 정미면 새마을지도자, 정미면 의용소방대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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